우연히 나선 아차산길에서 흐드러진 진달래꽃을 만난 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이었다. 품종 개량은 물론 잎조차 거부하고 김소월이 보았던 옛 모습 그대로 꾸밈 없이 아차산 능선을 지키고 있는 진달래꽃의 가난함에 가슴 먹먹하다. 화장하지 않은 여인처럼 조금은 초라하지만 온 몸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하는 진달래꽃이 마치 내 모습같아 처연하다.
망우리 공원 묘지가 이토록 아름다운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그 어떤 인터넷 검색에서도 망우리 벚꽃에 마음을 뺏기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하지 않았다. 낙화도 꽃임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가지가지 저마다 다른 빛으로 피어나는 산벚꽃,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요부같은 복사꽃, 초록빛과 노란빛이 어울려 또 다른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개나리. 소박하나 풍성하게 온 산을 차지한 조팝꽃. 무덤가의 보랏빛과 하얀 빛 제비꽃, 아직 피어나지 않은 붉은 꽃을 달고 오월의 비행을 기다리는 단풍나무, 초록빛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연출해 내는 봄날의 나무들, 꽃비 속에 고즈넉한 많은 꽃무덤.
꽃비를 맞으며 꽃무덤에 누워 있으면 나 죽어도 좋으리.
바람이 불 때마다 하롱하롱 날리는 이 아늑함 속에 누워 있으면 나 죽어도 좋으리.
이름 모르는 산새가 날아와 가끔 울어 준다면 나 죽어도 좋으리.
내 무덤 위에 보랏빛 제비꽃과 하이얀 제비꽃 어우러져 피어 준다면 나 죽어도 좋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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