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작은 들꽃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나무에 매달린 커다란 꽃밖에 볼 줄 몰랐다. 이제는 이름조차 낯선 작은 들꽃들이 마음에 들어 온다. 이제는 무리 지어 인해전술로 자신을 증명하는 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송이송이는 대단하지 않아도 여럿이 모여 모여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메밀꽃, 유채꽃, 조팝나무꽃, 이팝나무꽃..... 그 아름다움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늘 혼자이고 싶다. 무리와 떨어져 저만치 피어 있는 꽃이고 싶다. 그 허영 때문에 늘 외롭고 사람이 그리울지라도 나는 저만치 피어 있는 꽃이 되고 싶다. 누가 보아 주지 않아도 그저 피어 있는 것으로 행복한 꽃이 되고 싶다.
한라산 정상에서 바람에 시달려 뿌리 뽑힌 그 모습 그대로 삶을 견뎌내는 많은 나무들을 보았다. 바람 때문에 제대로 반듯하게 자라지 못해 거의 눕다시피 한 모습으로, 바람 때문에 뿌리가 반 이상 땅 위에 드러나 있는 모습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백록담 근처의 나무와 풀들! 그 경건한 모습에 가슴이 저며 온다. 누가 식물을 정적(靜的)이라고 했는가?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더욱 안으로 뜨겁게 갈망하여 더욱 치열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가끔 잊어 버린다.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꿈꾸는 식물의 삶. 그 삶의 처연함에 내 마음이 경건해진다. 그래서 내 닉네임을 '꿈꾸는 식물'로 정했냐는 남편의 질문에 그냥 웃어 버린다. 어찌 감히 내가 식물의 그 치열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냥 흉내라도 내며 살고 싶은 바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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