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들이 근무하는 데이케어센터에 자원 봉사를 하는 날인데, 그쪽 사정으로 자원 봉사가 취소 돼 모두들 산으로 떠난다. 어제 목요일 나는 CGV와 예당에서 미자씨와 머핀님은 가게에서 하루를 보내고 오늘 금요일 북한산에 들었다. 일요일 처서를 앞둔 금요일이라 물놀이는 마음을 접고 두 달만에 의상능선을 따라 북한산 주능선으로 향하기로 계획을 잡았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폭풍 땀으로 결국 물놀이 선수 두 분은 청수동암문에서 산성 입구 하산길에 입수하는 기쁨을 마음껏 누렸다.
두 달만의 의상능선은 끝없는 녹음 그 자체이다. 지난 6월 의상봉에서 의상능선에 오를 당시 부드러운 초록빛은 강하고 진한 당당한 녹음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8월의 끝자락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다. 지난 주 미자씨와 둘이 왔을 때는 구름과 안개에 싸여 조금은 음울했던 봉우리 봉우리들이 오늘은 처서를 앞두고 한결 부드러워진 태양 아래 화안하게 빛난다. 특별한 일이 없는 목요일이면 북한산에 들기 시작한 지 이제 삼 년이다. 계절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날씨에 따라 낯설게 달라지는, 동반자에 따라 모습이 변하는, 내 마음에 따라 다른 목소리로 말을 건내는 북한산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른 도반들과 간격을 많이 벌리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자꾸만 그 거리가 멀어진다. 아무 생각없이 앞을 향하여 위를 향하여 직진 본능과 수직 본능으로 뚜벅뚜벅 걷노라면 나 혼자 멀리 앞으로 진격해 있다. 숨을 고르며 북한산 주능선과 원효능선이 건내는 이야기를 듣는다. 왼쪽에 원효봉과 염초봉과 노적봉이 가까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문수봉에서 이어지는 사모바위와 비봉이 멀리 보인다. 녹음으로 봉우리의 바위들만 모습을 드러내고 크고 작은 바위들은 녹음의 향연에 취해 그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제 이 계절이 가면 또 다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 가겠지, 우리도 언젠가 돌아가듯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퐁당퐁당 삼목회에 오는 머핀님은 뒷걸음질에 힘들고, 미자씨는 머핀님과 나 사이에서 바쁘다. 천천히 여유롭게 의상능선의 봉우리를 즐기며 걷는다. 두고 온 의상봉,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을 방향을 돌려 바라보고 나아갈 나월봉, 나한봉, 715봉, 문수봉을 바라 본다. 살아 있음에 살랑 스치는 바람결을 느낄 수 있음에, 가볍게 땀방울을 흘릴 수 있음에 꼬리로 박자를 맞추며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를 볼 수 있음은 축복이고 은총이다. 이 축복과 은총이 또 다른 일주일을 살아낼 수 있는 나의 힘임을!
샤방샤방 걷기에 어울리게 대남문에서 식사를 715봉으로 변경, 715봉 쉼터에서 편안하게 오찬을 즐긴다. 나물미자님은 샐러드와 가지나물과 버섯전을, 안주머핀님은 고추달걀조림과 감자고구마구이와 매실장아찌를, 요리와 무관한 나는 훈제오리와 무쌈과 수박을 펼쳤다. 먹고 마시고 떠들고, 또 수다를 늘어 놓고 북한산을 온통 접수한 우리는 삼천사 물놀이를 접고 청수동암문에서 북한산성 입구로 하산길을 잡는다. 대남문과 문수봉 거쳐 삼천사 계곡 하산길 약 5km나 청수동암문에서 산성 입구 하산길이나 큰 차이는 없지만 지난 이 주 동안 대남문과 문수봉 능선으로 하산길을 잡았기에 오늘은 청수동암문으로 하산한다. 뇌우를 동반한 폭풍 소나기 덕분에 유난히 물이 넘친 북한산 계곡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처음에는 발을 담그고 가볍게 하산했다. 그런데 삼천사 우리 수영장 못지 않는 커다란 수영장을 발견했으니 북한산 물개 두 분이 어찌 그냥 갈 수 있으랴. 참새는 방앗간을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머핀님은 자유형과 배형으로, 미자씨는 땅 짚고 헤엄치기로, 나는 발 담그기로 북한산의 여름을 즐긴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바라보는 북한산의 하늘빛, 계곡에 발을 담그고 느끼는 북한산의 청아한 새소리와 매미 소리는 행복이다. 단언컨대 아름다운 시절이 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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