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삼목회 도반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북한산 물놀이를 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진관사 계곡이나 삼천사 계곡에 유리 전용 자연 풀장이 있어 이 년째 계속 그쪽에서 물놀이를 한다. 오전에 짧게 약 세 시간 정도 걷고 점심 먹고 하산길에 계곡에 발을 담그고 급기야 입수하여 물놀이를 하며 수다를 한바탕 늘어 놓고 계곡 냉장고에 담가둔 과일과 맥주를 나누는 것이 우리 삼목회의 물놀이다. 세 시간 오르기 등반을 하며 땀을 쏟고, 한 시간 점심 먹고, 천천히 한 시간 내려가며 입수 지점을 신중하게 물색하고, 두 시간 정도 놀고, 마무리 내려오기를 한다.
이 물놀이를 위하여 게으름쟁이 나는 서리태 콩국수를 매년 준비한다. 요리 솜씨는 물론이고 부지런함과 손의 잽싸기에 있어 평소에 머핀님과 미자씨에게 명함도 못 내미는 나는 매년 이 물놀이 행사를 위해 나름 꼼꼼하게 준비한다. 그 전날 아침에 부드럽게 세 번 정도 갈아 진하고 고소한 콩국을 냉장고에 보관하고, 오이를 가늘게 채 썰고, 수박을 가늘게 슬라이스하여 씨를 모두 빼고, 완숙 토마토 몇 쪽도 슬라이스하고, 터지지 않게 달걀을 정성껏 삶고, 보온병에 얼음을 담고, 아침에 가능한 늦게 국수를 삶는다. 일회용 대접에 소금과 일회용 장갑까지 챙기면 준비 완료이다. 이번에는 물놀이용 캔맥주 몇 개와 자두와 대추 방울이까지 챙겼다. 물을 유난히 좋아하는 머핀님, 굵은 땀방울 때문에 머핀님 못지 않게 물을 좋아하게 된 미자씨를 기쁘게 해줄 준비가 끝났다. 급기야 폭염주의보까지 내렸으니 금상첨화고 하늘은 우리 편이었다. 원래 지난 주에 물놀이를 해야 했는데 시어머니의 급작스런 상경으로 삼일회로 변경 되었고 비까지 내리는 악천후 때문에 북한산 계곡의 물맛을 느껴 보지 못했다.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나온다는 싱글벙글 도반들은 모두 기대 가득으로 꿈에 부풀었다.
'어리석은 장수가 적보다 더 무섭다.' 이 말은 모든 경우에 유효하다. 불광역 2번 출구에서 시작하여 불광터널까지 이동하여 향비로 오르거나 불광역 2번 출구에서 시작하여 수향비로 올라 사모바위 전후에서 진관사나 삼천사로 내려오는 것이 우리네 물놀이 방법인데,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겠다는 야심에 혜화역에서 만나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혜화역에서 종로 마을버스 8번으로 노을공원 방향으로 이동하여 서울 성곽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서울성곽 맛보기 걷기를 잠깐, 북악 하늘길을 향하여 걷기를 시작했다. 일요일 미자씨와 거의 뛰어 이동한 5km를 힘겹게 폭염과 싸우며 걷고 또 걷는다. 어렵게 도착한 북악과 북한산의 경계점인 북한산 명상길에서 다정한 형제봉 오르막이 또 우리를 기다린다. 결국 노을공원에서 대성문까지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계산에 넣지 않았던 것이다. 평소에 바람 불어 모자주의보를 발령했던 형제봉은 끝없이 쏟아지는 한여름의 햇발 아래 바람 한점 없는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어렵게 형제봉을 지나니 대남문 2km라는 표지가 우리를 겁박한다. 머핀님은 물놀이까지 접고 콩국수만 접수하고 내려 가신다며 공갈에 협박을 하시더니 급기야는 전화와 문자로 하소연까지 하신다. 대남문 1km 지점에서 두 분을 기다리는데 내 배에서도 꼬르륵꼬르륵 합창이 울린다. '생일날 잘 먹겠다고 굶어 죽는다'는 옛말 역시 언제나 유효하다. 오늘의 맥주 셔틀 미자씨, 닭도리탕과 해물볶음, 미자씨의 멸치볶음까지 배를 때려 가며 오르막은 생각지도 않고 먹고 또 먹었다.
대성문까지 700m는 가볍게, 대남문까지 300m 능선도 편안하게, 문수봉에서 두 분을 기다리는데 대남문에서 스친 머핀님이 대남문에서 내려 가고 싶으시단다. 문수봉, 통천문, 승가봉까지 가는 길이 겁나신다는 sos. 결국 삼천사 물놀이는 다음으로 미루고 대남문에서 산성입구로 하산을 결정했다. 내려 가려다가 다시 문수봉으로, 문수봉 방향에서 다시 산성으로, 몇 번 우왕좌왕 했지만 시간까지 3시로 향하여 하산을 결정했다. 하지만 지난 태풍과 집중 호우 내지는 폭우로 북한산 도처에 물이 있었다. 대남문에서 조금 내려와서 무릎까지 담그고, 더 내려와서 깊은 웅덩이가 있어 드디어 입수를 했다. 머핀님의 멋진 배형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삼천사 풀장은 아니지만 머핀님과 미자씨가 시체놀이를 할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아쉬었지만 물놀이 마음을 접은 우리에게는 뜻밖의 횡재였다.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은 두 분을 보며 엄청 미안하고 미안했다. 오래오래 물놀이를 하리라는 꿈에 부풀어 옷 안밖을 입수용으로 중무장하셨는데...... 아쉬움과 행복, 즐거움과 만족감 그리고 웃음과 수다. 무엇을 더 이상 말하랴.
우리들의 여름날은 이렇게 흘러간다.
'삼목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름날 의상능선 (0) | 2015.08.26 |
---|---|
한여름의 수향비능선 (0) | 2015.08.14 |
북한산 둘레길에서 북악 하늘길로 (0) | 2015.08.07 |
원효봉에서 숨은벽으로 (0) | 2015.07.24 |
북한산 종주 (0) | 2015.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