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목회

한여름의 수향비능선

꿈꾸는 식물 2015. 8. 14. 20:23

  지난 주 가볍게 끝난 물놀이가 못내 아쉬워 작년 물놀이 코스로 산행을 잡아 본다. 각황사에서 시작하여 가볍게 향로봉과 비봉 찍고 사모바위 근처에서 하산하여 진관사나 삼천사 계곡에서 한바탕 아니면 두바탕 놀고 돌아오는 관광용 산행이다. 눈병이 심해져 눈꼽이 잔뜩 끼고 눈이 통통 부어 머핀님은 결석하신다는 카톡이 새벽에 도착했다. 머핀님 결석을 틈 타 14문 종주를 해보겠다는 야심은 미자씨의 늦잠으로 불발했다. 결국 만남 시간을 30분 뒤로 미뤄 9시 30분 불광역 2번 출구에서 또 북한산에 든다, 여느 목요일처럼. 선천적으로 물을 즐기지 않는 나, 둘이라면 입수도 즐거워하는 미자씨, 혼자서라도 기꺼이 입수하는 머핀님이 결석한 오늘 북한산 입수는 저 멀리 사라진다. 불광중학교 근처 불광지킴터는 교통이 불편해서, 대호지킴터는 종주를 위한 산행이 아니어서, 용화지킴터는 자주 다녀서, 구기터널지킴터는 대로를 통과하기 싫어서, 여러 가지 이유로 용화지킴터와 구기터널지킴터 사이로 들목을 잡았다. 미자씨는 초행이란다. 오른쪽으오 방향을 잡으면 각황사 계곡으로, 왼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용화지킴터이다.

 

  용화지킴터에서 수리봉으로 향하는 길의 미덕은 조금만 올라도 확 트이는 시선과 리찌하는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바위길이다. 함께하는 도반들이 힘들어 하기 때문에 주로 구기터널지킴터에서 향로봉으로 오르는 각황사길을 애용해서 오랜만에 오르는 크고 작은 바위길이 마음에 닿는다. 멀리 남산타워가 보이고 가까이 북악산에서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눈에 밟힌다. 북악산하늘길의 팔각정을 기준으로 지난 주 걸었던 문수봉까지의 길을 눈으로 복기해 본다. 이렇게 자주 복기하고 틈틈이 암기해도 호시탐탐 많은 정보가 나를 떠나고 또 떠난다, 황망히! 보잘 것없는 카스를 쓰고 찾아주는 사람 거의 없는 블로그를 쓰며 눈물겹게 노력을 해도 내 기억은 조금씩 조금씩 황폐해진다, 당황할 정도로. 용불용설을 믿기 때문에 잘 듣지도 않고 별로 좋아 하지도 않는 삼목회 도반들을 상대로 산행 브리핑을 하고, 삼목회 그룹방에 친절하게 산행 정보를 올려 보지만 효과는 미지수이다. 수리봉까지 오르막 바위길을 미자씨와 씩씩하고 용감하게 걷는다. 오늘 따라 전문적인 여성 산꾼들과 초보 남자 산꾼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성 산꾼은 혼자가 많고 남성 산꾼들은 무리 지어 다닌다. 향로봉을 향한 능선에서 북한산 주능선을 바라본다. 왼쪽으로 멀리 노적봉을 앞세운 백운대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문수봉과 보현봉이 보인다. 이제 겨우 방향을 잡을 정도이니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비봉을 앞두고 갑자기 후둑후둑 쏟아지는 소나기. 예고대로 12시 소나기가 시간까지 정확하게 말복의 뜨거워진 산길의 지열을 식힌다. 사모바위 근처 커다란 소나무를 의지 삼아 옹기종기 비를 긋는다. 갑자기 내렸다가 홀연히 그쳐버린 소나기. 뒤끝없이 쿨한 것은 여름 소나기의 미덕.

 

  등산화의 모래와 바위의 물기가 빚어내는 미끄럼에 주의하며 승가봉과 통천문을 지난다. 굳이 물놀이를 하지 않아도 인자하신 하느님 덕분에 땅의 열기와 산꾼들 몸의 열기도 한풀 기세가 꺾였다. 승가봉은 북한산 초행인 듯한 산꾼들에게 포토존을 양보하고 우리는 선배(?)답게 소나기로 목욕재계한 북한산의 연봉들을 바라보며 두 팔을 마음껏 펼치고 문수봉으로 나아간다. 살짝 습기를 머금은 문수봉을 지나 든 사람은 몰라도 난 사람은 안다고 머핀님 없는 맛없는 점심을 먹는다. 산행을 할 때는 빈 자리가 그리 커보이지 않는데 식사 시간에는 유독 커보이는 머핀님 빈 자리가 바로 머핀님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대남문 지나 지난 주처럼 북한산성 입구로 하산길을 잡는다. 며칠 전 내린 소나기와 방금 전 내린 소나기 덕분에 계곡 곳곳에 크고 작은 천연 풀장이 보인다. 미자씨는 잠깐 손만 담그고, 같이 물놀이 할 친구가 없는 계곡의 풀장은 산지기 거문고이다. 대남문에서 삼천사 갈림길까지 1.7km, 삼천사까지 3.2km, 더하면 모두 4.9km로 대남문에서 산성입구까지 5.2km보다 짧은데 삼천사 쪽으로 그냥 밀어 하산하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입추에 말복까지 지났으니 올 여름 북한산 입수는 물 건너 간 듯하다. 

 

  북한산성 입구로 향하는 하산길, 계곡 물소리는 끝없이 들리고 등산로의 풀빛은 녹음을 자랑한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이 아름다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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