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목회

원효봉에서 숨은벽으로

꿈꾸는 식물 2015. 7. 24. 10:29

  늦장 장마에 막바지 장마가 중부 지방에 오신다는 일기 예보는 폭우에 돌풍과 뇌우를 매 시간마다 노래한다. 기상청 산악 예보에 따르면 북한산은 오후 3시를 지나 60% 약 1mm의 비이다. 그 3시도 조금 후에는 오후 6시로 미루어졌다. 여러 도반들과 의논한 결과 일찍 움직였다가 일찍 돌아오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왔다. 마침 미자씨도 겨운씨가 도우미로 나오실 수 있다기에 희희락락 경사가 났다. 8시에 구파발역 1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결정했는데 퇴근한 주선씨가 한바탕 분란(?)을 일으켰다. 돌풍에 호우에 뇌우인데 어떻게 산행을 계획할 수 있느냐, 어린 동생들이 가자고 하여도 나잇살 하나라도 더 먹은 사람이 말려야 하는데 더 날치고 있다느니, 군시렁군시렁 끝없는 연설이 이어졌다. 결국 주선씨 군시렁군시렁에 대한 대접으로 9시로 만남 시간을 미뤘다. 결과적으로 습기를 잔뜩 머금은 찜통 더위와 싸우며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밤골로 하산하며 살짝 만났던 가랑비에 대해서는 언급을 안 하기로......

 

  원래 계획은 산성 입구에서 원효봉 찍고 위문 거쳐 용암문- 대동문 - 보국문 - 대성문 지나 형제봉으로 하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늘 계획은 계획일 뿐 계획은 깨뜨리라고 있는 법이니까. 산성입구에서 계곡길 따라 덕암사 거쳐 시구문으로 갈 때까지는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는데 원효암으로 향하는 단조로운 300m 오르막길에서 모두들 폭포같은 굵은 땀방울을 쏟아낸다. 원래 땀이 많은 미자씨는 물론 뒤늦게 땀녀(?) 대열에 합류한 머핀님, 그리고 급기야 나까지도 땀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댔다.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하늘은 낮게 회색 구름을 드리우고, 머리에서 시작하는 땀방울은 목덜미를 거쳐 온 몸을 유장하게 흐른다. '유장하게'라고 할 만큼 쏟아지는 땀은 얼굴에 송알송알 목덜미에서 주룩주룩, 등줄기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흐른다. 갈 수 없는 염초봉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낮은 하늘을 이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까마득하게 동장대가 보이는 북한산의 주능선도 어렴풋하게 보이는 도봉산의 연봉들도 습기 그 자체인 무거운 대기 속에 지쳐 지쳐서 땀을 흘리는 듯 보인다. 북문과 대동사를 지나 진입한 백운대로 오르는 계곡길은 멀리 가까이 계곡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산님들이 많지 않다. 우매한 어린 백성들만이 산에 들었나 보다, 오늘은. 계곡의 초록은 이제 완연한 녹음이다. 그 녹음이 습기를 잔뜩 머금고 진초록의 그늘빛의 위용을 발산한다. 수박 한 통 먹어 치우고 물 많은 밤골로 하산하자는 머핀님의 의견으로 백운대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 밤골로 하산길을 잡는다.

 

  '밤골'로의 하산길은 지난 2012년 가을 이래 처음이다. 머핀님과, 아띠 산악회를 따라, 그리고 산산님과 함께 밤골에서 시작하여 한번은 비등 따라 설교벽으로, 다른 한번은 비등 따라 다시 밤골로, 나머지 한번은 백운대 방향을 따라 주능선으로 하산했다. 그 트라우마가 있는 길을 머핀님이 물이 많다는 이유로 즉흥적으로 가자고  한다. 숨은벽에서 백운대 방향으로 넘어오는 길을 찾지 못해 가볍게 알바를 하고 숨은벽 아랫길 그 길고 긴 길을 아래로 아래로 하강한다. 그 하강길을 거꾸로 올라올 때의 버거움이 싫어 꾀를 부렸던 그 해 가을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라 살며시 웃음이 나온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가 한참 동안 북한산에 들지 못 했으니...... 드디어 숨은벽이 보이는 지점에 도착했다. 처음 숨은벽을 만났을 때의 엄청난 감동이 새삼스럽게 밀려온다. 영겁의 세월이 만들어 낸, 무한의 시간을 견뎌낸 숨은벽과 설교벽의 위용에 그냥 숨이 막힐 뿐이다. 숨은벽을 향하여 난 바위길 능선은 머핀님이 걷기를 거부해서 다음으로 미룬다. 그것조차 고맙고 고맙다. 숨은벽과 설교벽을 앞에 두고 해말간 표정으로 그 날을 복기하는 머핀님,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열심히 듣고 있는 미자씨, 비를 머금은 대기의 부드러움, 이 모든 것을 지켜 보는 숨은벽의 넉넉한 너그러움. 밤골을 향한 숲길은 예전처럼 산꾼들의 흔적은 없고 한여름의 숲은 울창하고 계곡 곳곳의 물소리는 청아하고 지난 밤 비에 젖은 바위들은 아직 채 마르지 않아 미끄럽다. 밤골을 앞에 두고 급기야 비는 내리고 올 여름 처음 입수하려는 계획은 다음으로 미룬다. 국사당을 지나 효자 2통 정류장에서 남은 수박 한 통을 나누어 먹으며 다음 밤골 숨은벽 산행을 계획한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지닌 우리 삼목회 도반들이 눈물겹도록 고맙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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