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목회

원효봉에서 영봉으로

꿈꾸는 식물 2014. 5. 14. 11:50

  지난 겨울 1월 언젠가 눈길을 따라 원효봉에서 영봉으로 걸어본 후 이제 신록이 짙어가는 계절에 다시 이 길을 걷는다.

아마 내 기억으로 위문까지 아이젠 없이 걷다가 위문에서 아이젠을 차고 걸었던, 백운산장에서 맥주를 판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기억이 새롭다.

구파발역 1번 출구에서 9시에 만나 704번 버스로 산성 입구로 이동하여 계곡을 따라 수문 지나 덕암사 방향인 왼쪽으로 접어들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매주 목요일마다 만나도 할 이야기가 무궁무진인 머핀님과 미자씨의 정겨운 대화를 아스라히 들으며 그렇게 신록을 향하여 뚜벅뚜벅 앞으로 걷는다.(5월 8일 목요일, 6시간 30분 12km)

  이수회 5월 남도 기행 이후 몸이 가볍지 않아 이틀을 집에서 고스란히 쉬어 주었는데도 몸이 뭔가 미진한 듯 뒤끝이 남아 살짝살짝 언짢다.

머핀님 말대로 지리산 화대 종주라는 거사를 앞에 두고 몸 관리와 마음 관리, 인간 관리와 집안 관리를 잘 해야 하는데 모든 상태가 30% 부족한 듯 개운하지 못하다.

덕암사에서 시구문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걸으며 지난 주 올랐던 의상봉의 신록에 눈을 주고 이어진 의상능선에 마음을 준다.

시구문에서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 이 길보다 더 각이 높고 길이가 두 배인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코재를 오를 생각에 마음은 동동 떠오른다.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심장이 '빠담빠담, 바운스바운스, 두근두근' 할 생각에 마음은 벌써 지리산이다.

어젯밤 내린 비로 모든 존재들이 마알갛게 해맑고 모든 죽어가는 것들이 5월의 햇발 아래 반짝반짝 빛이 난다.

오른쪽의 의상능선, 앞쪽의 북한산 주능선, 왼쪽으로 멀리 들어오는 도봉산의 오봉, 그리고 내가 걸어가는 원효능선의 원효봉과 염초봉이 파르르 연두빛과 초록빛과 노랑을 머금은 녹색의 이파리에 덮혀 새롭게 다가온다.

오늘 산행을 위해 어제 마감하고 오늘 새벽에 샌드위치 싸고 먼 길을 달려 오느라 최저 수면 시간도 채우지 못한 미자씨는 그럼에도 신록보다 더 해맑게 웃으며 북한산에 탐닉 내지는 매몰되어 간다.

요즘 들어 부쩍 주변 사람들을 챙기기에 더 분주해진 머핀님은 많은 사람들을 건사하느라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화려한 한 주를 보내신 바람에 늘 그렇듯이 초반에 힘들어 하시며 커피 타임을 외친다.

윈효봉 못미쳐 커피 한잔 나누고 끝내 오르지 못할 염초봉을 넋잃고 바라보다가 북문을 지나 백운대로 방향을 잡는다.

대동사에서 백운대로 향하는 주능선을 만나, 위문까지 1.6km니 그냥 내처 걷기로 하고 멍한 상태로 가뿐 숨을 몰아쉬며 위문에 도착하니 12시 15분이다.

30분 가량 위문 앞에서 기다리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미자씨와 머핀님이 차례로 도착한다.

초보 산꾼들을 위해 양보하는 사양지심에서 백운대는 결단코 안 가시겠단다.  

백운산장에서 한 시간에 걸쳐 나까지 수다에 합세하여 길고 긴 점심을 먹었다.

로마가 망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시에스타 때문이라는데, 우리 삼목회의 산행 시간이 늘어지는 이유는 분명히 점심 시간 때문이리라.

화려한 오찬을 끝내고 가볍게 영봉을 향하여 오른다.

영봉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의 주능선은 늘 내 눈을 사로잡고 내 마음을 빼앗는다.

영봉에서 내가 결코 오를 수 없는 인수봉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도봉산 방향 오봉을 하나하나 헤아려 본다.

닿을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 차마 가질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열망, 끝내 실패할 거라는 열패감에도 불구하고 끝내 놓지 못하는 갈망.

염초봉과 인수봉은 내게는 아픔이고 그리움이며 열망이고 갈망이다.

  오랫동안 나는 내 인생이 바뀌기만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기다렸던 사람은 내가 아니다.

오히려 내 인생이 내가 바뀌기만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관계가 힘들 때 사랑을 과연 선택할 수 있을까?    

 

 

 

 

 

 

 

 

 

  

 

 

 

 

 

 

 

 

 

 

 

 

 

 

 

 

 

 

 

 

 

 

   

           

              

'삼목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봉산 종주  (0) 2015.07.02
다시 안산 자락길에서  (0) 2014.05.20
의상봉에서 향로봉까지  (0) 2014.05.06
하늘공원에서 목동으로  (0) 2014.05.06
얼렁뚱땅 삼목회  (0) 2014.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