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면을 끝낸 지인의 독려에 힘입어 지난 주에 이어 금요일 또 양평이다.
제주 올레에서 벤처마킹한 양평 물소리길 1구간인 양수에서 국수까지를 남한강 자전거길이 아닌 마을길을 걸었다.
마을길과 숲길, 강변길과 역사길, 오르막과 내리막, 포근포근 흙길과 바삭바삭 낙엽길, 연두빛 새잎길과 연분홍 꽃길을 행복하게 걸었다.
4월의 날씨를 되찾은 살짝 부드러운 차가움을 지닌 봄바람에 온 몸을 맡기고, 기습 추위로 미세먼지가 사라져 시리도록 투명한 하늘에 온 마음을 빼앗기고, 파르르 연두빛과 상큼한 연분홍에 몸과 마음이 은밀하게 위대하게 깨어남을 느낀다.
9시 50분 양수역에서 시작하여 국수역에 2시 40분에 도착하였으니 4시간 50분에 약 16km를 느긋하게 사방사방 온갖 여유를 부리며 걸었다.(4월 4일 금요일)
8시 54분 왕십리에서 시작하여 국수역에서 한 시간 정도 여유를 즐기다가 3시 37분 용산행 열차에 올라 덕소에서 1560번 버스로 환승하여 강병역 도착, 아침에 맡긴 복사물 찾고 저녁 찬거리 사서 집에 돌아왔는데도 5시 이전이다.
금요일의 여유로움이 마음까지 넉넉하고 관대하게 만든다.
양평 물소리길은 산 좋고 물 맑은 양평답게 숲길과 물길을 있는 그대로 최대한 살리며 양평의 역사적 기념물을 돌아보도록 동선을 살리고 새로운 시설물을 만드는 것을 의도적으로 자제한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 보여서 더욱 아름다운 길이다.
분홍빛 내음을 지닌 하이얀 매화, 연두빛 내음을 지닌 하이얀 매화, 목련이 목련(木蓮)임을 우아함과 기품으로 증명하는 하이얀 목련, 작대기만 꽂아 두어도 꽃으로 피어난다는 것을 증명한 가느다란 작대기에 핀 자목련, 양평 천지를 분홍빛으로 방방 꽃그늘로 뜨게 만드는 봄날의 종결자 벚꽃, 숲속이나 길이나 햇볕 푸짐한 곳이면 피어나는 노오란 민들레와 노란 보라 제비꽃과 현호색의 무리들.
부용산과 청계산을 가능한 부드럽게 온갖 여유를 부리며 옆으로 옆으로 늘어지게 돌리는 숲길에는 파르르 떨리는 연두빛과 산뜻한 연분홍 진달래와 바삭바삭 갈빛 지난 가을의 흔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청계산 숲길에서 이제 막 겨울 끝자락을 살며시 밀어내고 겨울의 터널을 통과한 듯한 어린 다람쥐를 보았다.
그 녀석에게는 지난 겨울이 생애 첫 겨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 만큼 작고 여리지만 눈빛은 반짝반짝 살아 있었다.
모처럼 봄볕을 즐기고 있던 녀석이 길을 비껴 낮은 나뭇가지에 걸터 앉아 한참을 나와 눈을 맞춘다.
디카에 손을 대면 녀석이 사라질 것같아 나도 가만히 서서 눈을 마주 보며 녀석의 첫 봄맞이를 축복해 주며 올 한해 녀석의 생의 평화를 기도해 본다.
바람도 햇볕도 숨을 죽이는 완전한 절대 시간이다.
정청손 묘와 한음 이덕형 신도비와 몽양 여운형 생가 기념관을 걸으며 만날 수 있도록 길은 이어 이어진다.
양수역에서 내려 습관적으로 남한강 자전거길로 올라가 가볍게 알바를 한건 하고, 한옥의 넉넉함과 품위를 고스란히 지닌 빈 집과 그 집을 지키는 작은 들꽃과 이야기에 빠져 1km 정도 산양산삼밭으로 진격하는 알바를 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우미한 목련에 빠져 다리를 놓치고, 한강 반대쪽 강변의 연분홍빛 뭉게구름 벚꽃에 빠져 또 알바를 가볍게 하면서도 내내 행복했다.
신원역 앞 황금 연못에서 먹은 미나리를 푸짐하게 넣은 미나리전의 향기와 비빔 메밀국수의 매실 엑기스의 뒷맛은 오래 오래 잊지 못할 상큼함이다.
겨우내 숨은 듯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해서 '봄'이라고 했던가?
솟아나고 싹트고 그래서 샘이며 스프링이고 봄이어서 'spring'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우리의 봄은 아른아른 은근하고. spring는 생동하는 맛이 있다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을 게다.
'파르르'는 봄과 spring 그 사이에서 상큼하게 탄력있게 떨리고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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