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기

안산 자락길

꿈꾸는 식물 2014. 5. 15. 01:53

  큰언니와 장정애님과 함께 가볍게 서울 시냇길을 걷기로 약속했는데 큰언니는 갑자기 집안에 일이 생기셨단다.

결국 장정애님과 지하철 3호선 홍제역 4번 출구에서 만나 안산자락길을 걷기로 했다.

서대문 구청이 3번 출구라기에 3번 출구에서 만났는데 백련산 가는 방향으로 걸어야 하니 4번 출구가 접근성이 더 낫다.

9시에 만나서 백련산 한번 가볍게 돌았으면 했는데 장정애님이 산은 안산과 인왕산으로 충분하다신다.

홍제천으로 걸어 한강 쪽으로 방향을 잡아 조금 걷다가 안산 자락길로 접어 들어 안산 자락길을 가장 크게 한 바퀴 돌고 다시 조금 더 돌아 서대문 의회로 하산하여 선바위 방향으로 인왕산에 접근, 인왕산 정상 지나 창의문 방향으로 하산, 경복궁역까지 걸었다.(5월 9일 금요일, 6시간 19km)

평지의 달인 장정애님은 경복궁에서 댁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 합정까지 다시 걸어 가셨다니 '갈 데까지 가보자'의 진수를 보여 주셨다.

  홍제천은 개나리가 만발하던 어느 날 큰언니와 함께 걸었던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온통 연두빛 향연이다.

홍제천에서 한강 방향으로 길을 잡아 조금 걷다가 인공 폭포와 물레방아가 있는 곳에서 안산 자락길로 접어 들었다.

인공 폭포는 시원한 물줄기를 흘러 내리고 물레방아는 제법 운치 있고, 허브 공원은 일자산 천문대 허브공원에 비해 아직 작지만 분명히 끝은 창대할 조짐을 보이며 크고 작은 허브들이 이름표를 잔뜩 달고 미묘한 내음을 풍기고 있다.

안산만 가려면 2호선 홍대역에서 접근하는 것이 훨씬 편리하다는 장정애님 말씀대로 다음에 한번은 홍대에서 안산에 오리라 기억해 둔다.

휠체어와 유모차를 위한 무장애 트레킹 길로 인정 받은 길답게 안산 자락을 크게 원을 그리며 목재 데크로 이어 놓았는데 안산이 높이는 별로지만 산 자체가 서대문구 전체에 걸쳐 있어 그 둘레길 한번 도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안산 방죽에서 자락길로 올라선 우리는 시계 방향으로 가능한 자락길을 따라 크게 돌았다.

멀리 보이는 그리운 북한산의 연봉들, 수향비와 승가봉과 문수봉 그리고 형제봉까지 손에 닿을 듯 다가온다.

인왕산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서울 성곽의 모습도 또렷하다.

조금 방향을 돌리면 남산이 보이고 멀리 관악산까지 정겹다.

목재 데크를 따라 걷노라면 사이사이 의자와 정자가 있고 정상인 봉수대를 향한 등산로가 계속 나타나고 서대문 곳곳을 향한 하산길 안내도 친절하다.

이렇게 하산길이 다양하니 작년 어느 여름날 삼목회에서 가볍게 알고 안산에 들었다가 엉터리로 하산하여 독립문 지하철역 근처에서 시위대들과 함께 어울려 선바위를 찾아 헤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많은 인왕산 방향과는 달리 메타세콰이어 숲은 뜻밖에 사람들이 적어 호젓한 분위기에서 커피 한잔 나누며 온 몸 가득 숲의 향기에 젖어 본다.

한 바퀴 크게 돌고, 다시 그 길을 가볍게 조금 더 돌다가 서대문구 의회로 방향을 잡아 안산을 내려 온다.

  길치와 방향치에 다른 사람들에게 길도 잘 묻지 않는 나와는 달리 장정애님은 방향 감각이 뚜렷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 물어 보는 미덕까지 갖추셔서 엉터리 방향으로 나아가는 나에게 가끔 제동을 걸어 올바르게 이끈다.

무조건 높게 오르고, 무조건 직진하는 나의 성향을 이미 간파해 버린 장정애님 덕분에 독립문역 방향을 잘 잡아 세란병원을 지나 선바위로 향한다.

국사당에서 선바위로 올라 더 위로 오르자는 나의 제안을 '니나 오르라'는 말로 장정애님이 거절을 하셔서 나 역시 다음을 기약하고 나란히 앉아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해골바위로 오르지 않고 바로 옆으로 성곽을 향하여 수평 이동하여 서울 성곽 안으로 진입한다.

전에 삼목회 때는 선바위 무시하고 해골바위만 갔었는데 그때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니라 해골바위에서는 군부대가 있어 수평 이동을 할 수 없어 결국 오늘퍼럼 아래로 수직 이동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안산에는 만발한 아카시아가 인왕산에는 아직 꽃망울이 또렷한 개화 직전의 모습으로 만개를 기다리고 있다.

성곽 언저리에 피어 있는 보랏빛 엉겅퀴에는 호랑나비 몇 마리가 날아 들고, 작년 겨울 첫 겨울잠을 경험 했을 것같은 어린 다람쥐는 저 혼자 분주하고, 북악산에서 인왕산까지 자리를 잡은 수방사 젊은이들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다.

인왕산 정상 지나 기차바위 능선으로 하산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창의문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북한산은 이제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다가오고, 하이얀 아카시아 연두빛 내음은 점점 진해오고, 북악의 성곽은 또렷하다.

창의문 지나 경복궁으로 이어지는 그 길은 언젠가 장정애님과 눈길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눈길을 걸어 창의문 근처 치어스에서 치맥 먹고 다시 그 길을 되집어 걸었던 기억은 또렷한데, 우리는 거기에서 얼마나 멀리 걸어 왔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또 걸어서 우리는 이렇게 모였다가 흩어지고 또 다시 모였다가 흩어진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방향이라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아니면 방향이라도 정해져 있는지,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돌고 도는 순환의 링반데룽에 빠져 있는지, 우리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짐작조차 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파르르 연두빛에 취해서 연두빛 아카시아 내음에 탐닉해서 걷고 또 걷는다.

그냥 헤어지기에는 뭔가 미진하고 아쉬워서 열정감자에서 감자에 호프로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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