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선씨와 정말 오랜만에 검단산 탐방에 나선다.
감기로 인하여 몸상태가 개운하지 못하고, 새벽에 살짝 서설처럼 3월 눈이 내리고, 늦게까지 침대에서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모처럼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가볍게 아침 준비도 해줘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로 11시가 다 되어 집에서 나선다.
늘 꿈은 창대한 주선씨를 살살 달래서 검단산으로 방향을 잡아, 검단산 탐방 끝내고 백화점 들러 양복과 구두를 사기로 했다.
검단산 근처 에니메이션 고등학교 근처에 주차를 하고 산에 올라 유길준 묘소로 하산하였다.(3월 9일 일요일, 3시간 15분 8.1km)
우리처럼 집에서 한껏 일요일 아침 여유를 부리다가 부랴부랴 나온 사람이 많은 듯 검단산은 싸늘한 꽃샘 봄바람에도 탐방객들이 넘쳐 난다.
아이젠을 차고 하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이젠을 처음으로 집에 두고온 우리는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스틱으로 대신하면 될 것이라 애써 자기 암시를 하며 산에 들었다.
지난 밤에 내린 눈이 제법 쌓여 검단산은 마지막 겨울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부드럽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물결치듯 바람처럼 정상을 향하여 길은 너그럽게 이어지고, 사람들은 사이사이 폭탄 때문에 느리게 느리게 정상을 향하여 접근한다.
내 걸음만큼 앞으로 쭈욱 걸었다가 주선씨를 기다려 눈 한번 마주치고, 다시 탐방객들 사이를 뚫고 앞으로 내 욕심만큼 쭈욱 나갔다가 주선씨를 기다리는 방식으로 나는 일요일 산행을 즐긴다.
어차피 주선씨랑 함께 걸어도 귀에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 삼매경에 빠진 주선씨 옆은 의미가 없고, 옆에 걸으려면 전혀 운동이 되는 것같지 않은 나의 못됨을 달래는 방법으로 내가 고안해 낸 것이 달리고 기다리고 또 달리고 기다리기이다.
657m 검단산 정상에서 바라본 두물머리는 환상 그 자체였다.
꽃샘 추위 덕분에 미세 먼지가 사라진 서울 하늘은 시리도록 투명하고, 산을 만나면 부드럽게 돌고 돌아 그렇게 흘러 흘러온 한강은 하늘빛보다 아프도록 시린 투명함으로 남한강과 북한강 두물이 만나 하나 되어 서해를 향하여 흐르고 있다.
그리운 북한산과 도봉산의 연봉들은 시린 하늘을 머리에 이고 흐르고, 눈쌓인 용마산의 위용은 당당하고, 한강 바로 건너 예봉산과 예빈산은 정다운 모습으로 반갑게 마음에 들어온다.
오던 길로 원점 회귀 하산을 즐겨하지 않는 우리지만 아이젠을 찬 사람들 때문에 조금 망설이다가 늘 그런 것처럼 유길준 묘소 방향으로 방향을 잡는다.
언제나 이쪽 하산길이 눈이 많았는데 그동안 기온이 올라 눈이 녹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바람의 방향이 변했기 때문일까 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등산길보다 눈이 훨씬 없어서 미끄럽기와 질퍽거리기가 덜 하여 편안한 기분으로 하산길에 들어선다.
산곡초등학교에서 주선씨를 따라 승민이랑 처음 검단산에 오른 것도 3월 즈음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흙산이 대부분인 탓에 땅이 녹아 질퍽거려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를 신었던 승민이의 신발이 진흙 구덩이에 사로잡혀 빠지지 않아서 나처한 지경에 빠졌는데도 젊고 어린 우리는 깔깔대며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검단산 정상에서 처음 보았던 팔당대교에서 저 멀리 양수대교 방향으로 펼쳐지는 한강의 자태에 얼마나 나는 매혹 되었던가?
하산길 꿩고기 샤브샤브를 나눠 먹으며 한껏 기분이 하늘로 하늘로 올라갔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시간과 거리가 만들어낸 추억이라는 그리움 때문일까? 아니면 흘러 흘러 지나가 버린 젊은 날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 때문일까? 아니면 제법 싸늘한 봄바람의 예리함 때문일까? 아니면 늙어서 제어되지 못하고 눈물이 줄줄 흐르는 노추 때문일까?
단언컨대 이 모든 것 때문이다.
유길준 묘소에서 길게 이어지는 하산길에 나는 조금 울었던 것 같다.
'걷고 또 걷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련산에서 안산까지 (0) | 2014.04.01 |
---|---|
팔당에서 양수까지 (0) | 2014.04.01 |
관악산 소박한 걷기 (0) | 2014.03.04 |
겨울왕국(남한산성) (0) | 2014.02.11 |
불곡산 (0) | 2014.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