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우리 땅 걷기 서해안 트레일, 이름도 거창한 `목포에서 신의주까지`에 따라 나섰다. 산산님도 머핀님도 없이 초심을 항심으로 마음 다지고 중무장을 했다. 길을 걷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늘 낯가림하는 내 자신의 문제를 그대로 안고 금요일 양재역 12번 출구에서 목포를 향해 떠난다.
첫날 기행. 늘 그렇듯이 고사를 시작으로 유달산 잠깐 찍고 해안길로 이동하여 대망의 걷기에 나선다. 6시간 동안 점심 시간 빼고 27km를 걷고 하루를 마감한다. 계획에 따르면 오늘은 35km를 걸어야만 했다.( 2월 22일 토요일, 6시간 27km)
유달산은 늘 그렇듯이 산이 아닌 관광지 내지는 유원지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한잔 걸친 약간은 삐딱한 이순신 장군 동상, 끝없이 틀어대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친절하게 포장된 탐방로 아닌 탐방로. 노적봉과 목포 앞바다를 바라보는 것으로 작은 위로를 삼는다. `목포는 항구다` 국도 1번과 2번의 출발점이라는 표지석과 목포 개항을 가져온 옛날 일본 영사관 근처 창고를 보는 것으로 목포를 마무리하고 바닷길을 걷는다.
바닷물이 모두 빠져 회색빛 갯뻘이 드러난 해변을 걷는 기쁨, 온 몸 가득 봄바람을 맞으며 바람길을 걷는 환희,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는 온유한 공기, 봄이 이제 멀지 않았다는 나른한 예감, 오랜만에 만난 도반들의 따뜻한 인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아 조금 힘들다. 길에서는 평화롭고 편안한데, 식사 때나 잠자리에서 버스 안에서 마음이 조금 불편하고 언짢다. 그 불편함과 언짢음이 해소되지 않으면 다음에 다시 합류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내 탓인가? 네 탓인가? 너네들 탓인가?
동암리에 있는 사도세자 사당에 잠깐 들렸다.우리나라 곳곳에서 단종 사당과 최영장군 사당은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사도세자 사당은 조금 낯설다. 서울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목포에 꿈에 만난 사도세자를 위해 백성들이 자진해서 사당을 세우고, 해마다 사도세자를 위해 제사를 지내고...... 참 착하고 착한 백성이다. 그 백성의 착한 마음에 부응해서 나라는 과연 그 백성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그 착한 마음에 때로 화가 나고 속이 상해 막 비난하고 싶다.
불편한 저녁 시간을 끝내고 인사치레만큼 앉아 있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불편하지만 다음에는 조금 자유로우리라. 마음을 내려 놓으면 걸릴 것이 없어서 그만큼 자유로우리. 그러면 마음의 빚이 없어서 더욱 더 자유로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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