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달만에 우리 땅 걷기 기행에 참석한다.
한강의 발원지인 검용소에서 시작하여 열 차례에 걸쳐 김포 월곶면 보구곶리에서 서해와 만날 때까지 강을 따라 흐른다.
태백 검용소에서 시작하여 삼척 낙천리까지 걸었다.(3월 15일 금요일 - 3월 17일 일요일)
마이코치에 따르면 토요일에는 30km를 걷고, 일요일에는 20km를 걸었다.
고목나무샘에서 발원하여 검용소를 거쳐 하장천 골지천을 지나며 물 흐르는 소리를 낸다.
다음 기행에는 아우라지에서 송천과 만나게 되리라.
낙동강이 그러하였고 남강이 그러하였고, 늘 강의 발원지는 실망이어서 '처음은 미비하나 끝은 창대하리라'하며 섭섭한 마음을 위로를 하고 그 다음을 기약하였다.
그러나 검용소는 고목나무샘에서 펑펑 솟아나오는 물이 예사롭지 않고 신비하다 못해 90여 명의 일행과 함께인데도 귀기어린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올해 처음 여섯 명의 도반들만이 도강을 했다.
양말과 신발을 벗고, 바지를 허벅지까지 올리고, 그렇게 한강과 첫번째 접수했다.
물은 차다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예리고 날카롭고 멍멍하고 아프고,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 중심을 잡고 서있기가 힘이 들었다.
강바닥의 크고 작은 돌은 동글동글 미끈미끈 흔들흔들 나를 뒤흔들었다.
도강을 마치고 나무 토막같은 발은 꽁꽁 얼어 등산화 속에 잗 들어가지 않고, 걸을 때마다 얼어버린 발이 땅에 닿으며 아프다고 주인을 욕한다.
수직의 둑방을 누군가가 매어 놓은 밧줄을 잡고 유격 훈련 하듯이 올라 왔다.
얼어버린 발이 조금이라도 풀리기를 소망하며 빛의 속도로 걷고 또 걷었다.
급기야 후미에게 욕 한바가지 얻어 먹고......
2008년 우리 땅에 가입하여 2009년 낙동강 걷기를 처음 시작했던 때의 초심은 지금 내게 남아 있지 않다.
2011년 해파랑 걷기를 했던 2월의 두근거림과 떨림도 지금 내게는 없다.
단지 나는 강물 소리를 들으며 멍 때리고 마음을 내려 놓고 그냥 앞으로 걷고 싶을 뿐이다.
2박 3일의 일정을 소화해 내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신세계'에서 나온 명대사가 떠오른다.
"강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이고, 모든 경우에 유효하다.
"공격이 최고의 수비이다."
이것 역시 모든 경우에 유효하다.
한번도 어떤 집단에서 주류에 속했던 기억이 없는 내가 감히 무엇을 꿈꾸었던가.
한번도 어떤 집단에서 다수에 속했던 기억이 없는 내가 감히 무엇을 기대하였던가.
주류에 속하고 싶지도 않았고, 다수에 끼고 싶지도 않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삶을 살아내고 싶어 했던 내가 늙어서 총기가 없어지며 나도 모르게 미망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미망의 덫에 걸린 내가 너무 부끄럽고 한심해서 마음이 아프고 저려 온다.
관계 맺기에 늘 낯설어하며 낯가림하는 내가 학연과 지연도 없는 이곳에서 이 정도 견뎌내며 뿌리 내렸으면 토닥토닥 잘 했다고 칭찬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감히 주류와 다수에의 진입을 꿈꾸다니, 그 꿈이 가상하다 못해 과대망상이 아닐까?
이 정도면 충분하고 너무 충분하다.
이제 무소의 뿔처럼 담대하고 당당하게 그렇게 가리라.
물은 늘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쉬지 않고 흐르며, 물은 자신의 빛깔과 향기에 맞는 이름을 주장하지 않고 담는 그릇에 따라 형태를 바꾸며, 물은 다 채우서 넘쳐야만 또 다른 곳으로 흘러 간다.
늘 더 높은 곳으로를 지향하는 나는 낮은 곳으로 흐를 자신도 없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 빛깔과 향기에 맞는 내 이름을 불러 주기를 소망하고, 다 채우지 못해도 또 다른 곳으로 흘러 가길 기원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나는 강을 소망하고 강과 흐르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동강, 서강, 평창강, 주천강, 달천, 섬강,청미천,흑천, 그리고 북한강과 합류하는 양수리까지, 내가 늘 걷는 한강이 김포평야를 지나 서해에 닿을 때까지 당당하고 자신 있게 본래 내 모습과 그 본질을 간직하며 함께 흐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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