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암사에서 수도암으로 가는 수도산에서 길을 잃다.
수도산 청암사로 가는 길, 오미자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청암사는 비구니들을 위한 승가대학이 있는 절이라는데, 절집이 단아하고 정갈하다.
약간의 비가 내리는 절집 마당에는 정갈한 빗자국이 희미하고, 대웅전의 단청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담고 그 모습 그대로 아득하고, 요사채는 물빛 옷을 마악 걸치고 나온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나의 모습처럼 애잔한 느낌까지 밀려온다.
계곡을 건너 바라본 청암사는 계곡의 물소리와 안개비, 그리고 여름날의 푸르름에 싸여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절집 뒤로 난 길을 따라 수도암으로 가는 길, 신샘께서 15년 전에 한번 가셨다는 그것도 길을 잃고 헤매었다는 희미한 기억을 붙잡고 수도산으로 들어 갔다.
15년 전, 아마 갈수기 때 계곡이 말랐을 때, 헤매고 다니셨으리라.
결국 5시간 동안 9km를 산 속에서 헤매야만 했다.(9월 9일 일요일)
처음부터 우산과 우비를 쓰지 않았던 나와는 달리 우장을 갖추었던 도반들도 대부분 우산을 치우고 우비만 입거나, 쏟아지는 땀 때문에 우비를 포기해야만 했다.
처음 물을 건널 때는 물이 한번이려니 해서 등산화와 양말을 벗고 건넜는데, 두 번째부터는 양말과 등산화를 신고 그대로 입수했다.
몇 개의 물을 건넜는지, 몇 번이나 희미한 길마저 보이지 않아 당황했는지, 뒷사람들이 따라 오지 않아 으름나무와 야생 오미자 나무 그늘에서 머뭇거렸는지 모른다.
급기야 선발대로 나갔다가 다시 내려 왔다가 또 올라야만 했고, 계속된 폭우로 물 무게를 이기지 못해 눈 앞에서 커다란 나무 둥치가 떨어지는 광경에 깜짝 놀라야만 했다.
린다님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몇 개의 물과 몇 개의 고개를 넘고 또 넘고, 결국 정상을 향해 나아가 능선길을 찾기로 했다.
정상이려니 오르면 또 다른 봉우리가 있고, 하늘이 환해 보여 정상이려니 기대하면 또 다른 봉우리가 있고, 혹 우리 모두 링반데룽에 빠지지 않았나 걱정할 즈음, 비로소 인간이 만든 표지판과 조우했다.
드디어 만난 수도암의 문살의 아름다움이 얼마나 절절하게 마음에 닿는지 모른다.
청암사 아랫쪽 화장실 근처에 수도암으로 가는 큰 길이 있는데, 등산로 표지판을 보지 않고 15년 전 헤매려 길을 잃다가 실수로 길을 찾은 신샘의 기억만 따라 왔으니, 본의 아니게 빗속에 멋진 계곡 트레킹을 했다.
길을 잘못 찾아 물을 수십 번 건넜다는, 앞에 선 앞잡이 내려가서 맞아야 한다는 뼈있는 농담이 오고 갔다.
아, 모든 일에서 첫 단추가 얼마나 중요한가.
아, 모든 경우에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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