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목회

내시묘역길에서 창의문까지

꿈꾸는 식물 2014. 2. 14. 09:37

  '삼목회'란 이름은 삼각산을 매주 목요일에 걷는다는 의미로 나름 고심과 의논 끝에 지어진 이름이다.

그런데 그동안 도봉산, 운길산, 관악산으로 외도를 하였고 설날 연휴와 도반들의 사정으로 목요일이 아닌 수요일과 금요일로 바꾸어 걸었다.

모처럼 삼목회다운 날이려니 생각하고 구파발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에서 머핀님의 전화를 받았다.

오랫동안 식물인간으로 삶의 끈을 유지하던 머핀님의 절친 미혜씨의 남편이 이제 이승의 인연을 접고 저승으로 가셨단다.

머핀님은 결국 마포구청에서 집으로 다시 돌아가셨고 미자씨와 나만 걷게 되었다.

구파발에 도착하니 미자씨가 발가락을 조금 다쳤다고 하시기에 가볍게 생각했는데 또 하나의 커다란 악재가 되어 있었다.  

국을 올려놓고 잠깐 졸았는데 깊게 잠이 들어 냄비를 홀라당 태우고 거의 불나기 직전 자욱한 연기 때문에 깨어나 가스불 끄기 위하여 주방을 향하여 거실을 뛰어가다가 발을 잘못 디뎌 왼쪽 엄지 발가락을 접지르셨단다.

엄지 발가락이 통통 붓고 멍까지 푸르게 올라 오기 시작하여 등산을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어서 의논 끝에 쉽게 들고 날 수 있는 북한산 둘레길로 방향을 잡았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가게 샌드위치까지 완벽하게 해치우고 온 미자씨가 속이 상하고, 평일 북한산에 혼자 들지 않는 나도 난감해서 결국 미자씨 발가락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갈 때까지 가기로 결정하고 704번 버스로 북한산성 탐방 지원 센터로 이동하여 내시묘역길부터 시작했다.

내시묘역길, 마실길, 구름정원길, 옛성길 걸어 미자씨 발가락이 견딜만 하다기에 탕춘대 능선으로 접어 들어 전에 실패한 북한산과 인왕산을 이어주는 길을 찾기로 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유원하나 아파트 뒷길인 홍제근린공원으로 접근하여 기차바위 거쳐 인왕산 성곽으로 접근하여 드디어  창의문으로 하산했다.

(2월 13일 목요일, 7시간 20분 20km)

  내시묘역길에서 마실길로 향하는 북한산 둘레길은 얼마 전 주선씨랑 함께 걸었던 길이기에 편안하게 미자씨와 보조를 맞추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는다.

문상을 가신 머핀님으로 어쩔 수 없이 화제는 '사람은 어떻게 죽어 가는가' '사람은 어떻게 떠나 가는가'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떠나고 남겨진 사람의 지난한 슬픔 때문에 차라리 떠난 사람이 이 슬픔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 하나로 떠난 이가 질투가 날만큼 부러울 때가 있었다.

시간이 10년 정도 지나고 나면 남아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내기 때문에 떠난 사람만, 그래  '죽은 놈만 불쌍하다'는 옛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게 된다.

죽음, 떠남, 남겨짐, 막막함,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살아내기에 대하여 이야기하느라 디카를 베낭에서 꺼내지도 않고 내시묘역길 지나 마실길, 구름정원길까지 거의 조금도 쉬지 않고 걸었다.

날은 포근하다 못하여 베낭을 맨 등에 살짝 땀이 흐르고, 잔설마저 거의 사라진 둘레길은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 질척질척 3월 중순 봄날의 진흙탕길을 연출하고, 가까이 다가온 수리봉과 향로봉은 첫눈인 양 잔설을 조금씩 안고 초가을 모습으로 우리를 지켜 본다.

장미공원을 지나 옛성길로 접어들어 둘레길 모퉁이에서 점심을 먹고, 인내심 많은 미자씨의 배려와 관용으로 탕춘대능선으로 하산 인왕산 길을 찾기로 했다.

탕춘대능선으로 향하는 길에서 지난 가을 산산님께서 말씀하신 향로봉에서 구기터널 전으로 하산하는 등산로를 보았다.

그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여 굽이굽이 탕춘대능선으로 하산했던 기억 때문에 그 길의 갈림길을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지만 '아서라'하며 다음으로 미룬다.

탕춘대 암문을 거쳐 탕춘대능선에서 상명여대로 향하는 길은 미자씨와 원효봉에서 걸었던 기억이 있어 씩씩하게 나아간다.

탕춘대 성곽 끝에서 왼쪽이 상명여대길 오른쪽이 홍제 극동아파트길 가운데는 길이 희미한 등산로인데, 전에 왼쪽으로 하산하여 홍지문 찾아 상명여대 캠퍼스를 오른쪽으로 걸었던 기억이 있어 오른쪽을 선택했다.

결국 극동아파트 통과하여 홍제천으로 걸어 다시 옥천교 홍지문 찾아 왼쪽으로 거꾸로 걸어 올라 가는데 기적적으로 반대편에 유원하나아파트가 보였다.

건널목을 확보하고 다음 길을 위하여 옥천교까지 걸어 대진하이츠빌라를 머리 속에 찍었다.

다음에는 가운데 성곽 중심을 따라 그대로 이동하거나 아님 극동아파트로 가다가 극동아파트 직전 초록색 펜스에서 산으로 향하면 되리라.

유원하나아파트로 건너 아파트를 통과하여 뒷쪽에 있는 4시 정도 홍제근린공원으로 들어 갔다.

한 시간 정도면 자하문에 닿으리라 계산했는데 공원길이어서 둘레길 형태로 되어 있어 길 따라 가면 홍은동이나 다른 동네로 이어지는 듯 싶어 간단하게 잠깐 헤매다가 산을 오르기 시작하여 봉우리에 올랐다.

거기에서 김현선의 착각이 시작되어 길치의 엉터리 길찾기 본능이 발동하여 소망탑이 있는 방향으로 결정했다가 멀리 보이는 홍지문과 홍지문터널과 내부 순환도로를 보고 다시 반대로 방향을 돌려 구사일생으로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

산봉우리에서 소망탑이 없는 오른쪽 방향으로 부드럽게 흐르는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정상과 부암동 표지 나오는데서 어리버리 동네 얼치기 초보꾼을 만나 난감해 하다가 부암동은 성밖이니 정상 방향으로 가다가 내가 잘 아는 성곽 안길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이 결정에 축복 있으라.

말로만 듣던 기차바위를 처음 지나니 그리운 북악과 인왕의 서울 내성 성곽이 들어 온다.

인왕산에 오르다 보면 정상 전에 전망대와 초소가 있는 곳에서 서울 성곽 밖으로 나가 기차바위 거쳐 부암동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내려가면 홍제근린공원으로 향하게 된다.

서울 성곽으로 무사히 들어온 우리는 길을 찾았다는 기쁨에 환희를 느끼며 창의문 즉 자하문으로 방향을 잡는다.

지난 여름 삼목회에서 백련산 안산 인왕산 이어 걷기를 할 때도 인왕산 정상 옆에서 더위와 갈증으로 서소문으로 하산하여 실패, 지난 가을 미자씨와 원효봉에서 시작하여 북한산 주능선 거쳐 탕춘대 능선 지나 왔지만 유원하나아파트를 찾지 못해 퇴근길 쏟아지는 매연을 뚫고 씩씩하게 걸어서 자하문로 이동하여 실패.

이 두번의 실패를 바탕으로 결국 북한산에서 인왕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아냈다.

  윤동주문학관에서 경복궁역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미자씨의 발가락이 많이 부어 올라 왔을텐데도 그냥 나는 행복하다.

마음이 너그럽고 배려심 많은 미자씨 덕분에 내가 행복하다.

오늘은 미자씨가 우리 삼목회와 인연을 맺은 지 꼬옥 일 년이 되는 날이다.

아름다운 인연으로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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