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목회

원효봉에서 영봉으로

꿈꾸는 식물 2014. 1. 16. 23:35

  목요일마다 찾아오는 한파가 이번 주는 살짝 비껴 운 좋게 목요일에 모처럼 만난 포근한 날이다.

지난 주 오봉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연봉 가운데 영봉의 모습이 가장 가깝게 마음에 닿아 영봉을 오르는 탐방로를 잡았다.

북한산 탐방 지원 센터에서 바로 백운대로 오르는 길은 너무 밋밋하고 단순하고 시간이 짧아 원효봉 거쳐 백운대를 찍고 하루재 지나 영봉으로 길을 잡는다.

구파발역 1번 출구에서 9시에 만나 매일 하차하는 곳보다 한 정거장 더 가서 효자마을에서 704번 버스에서 내려 버스 진행 방향으로 걷다가 둘레길로 들어가 내시묘역길을 탐방 지원 센터 방향으로 걸었다.

원효암 표지를 따라 시구문으로 향하는 이 길은 내가 혼자 처음으로 14문 종주를 할 때 걸었던 이후로 한번도 걷지 않았던 길로, 처음 14문 종주에 나선 날 두근두근 마음 떨린 긴장감이  새삼 그리워진다.

계곡길 따라 덕암사에서  오는 탐방로와 만난 시구문에서 의상봉을 바라보며 원효봉으로 오른다.

  원효봉까지 오르는 탐방로는 눈이 거의 없어 아이젠도 필요가 없는데 빠담빠담 심장 소리 벅차게 오른 원효봉에서 바라보는 의상 능선과 멀리 보이는 북한산 주능선은 하이얀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염초봉은 그 모습 그대로 눈을 모두 벗어 버리고 하얀 바위산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상봉에서 커피를 마시기 위하여 베낭을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양 까망 크고 작은 늙고 어린 들고양이 다섯 마리가 몰려 온다.

지난 주 오봉에서 만난 국립공원 관리 공단 직원들에게 절대로 들고양이와 들개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교육 받은 우리는 딴전을 부렸다.

옛날에는 북한산에 들개가 많았는데 이제는 온통 들고양이 세상이다.

505m 의상봉에서 산성 따라 염초봉 옆 북문을 지나 계속 아래로 길은 떨어지며 북한산 주능선으로 이어진다.

북한산 주능선에 들어서니 오른쪽으로 노적봉이 왼쪽으로 만경대가 모든 것을 내려 놓은 1월의 겨울 나무 사이로 시야에 들어온다.

지난 가을 산산님이 모처럼 오셨을 때 의상봉을 찍고 의상능선으로 가겠다며 내가 덜 떨어진 도반 노릇을 했을 대 이 길을 걷고 처음인 듯 싶다.

그 때는 가을 단풍이 꽃보다 고왔는데 지금은 그 찬연한 단풍의 기억은 이미 사라지고 말라 비틀어져 아직도 땅으로 돌아가지 못한 남겨진 슬픈 단풍들이 가을의 잔해처럼 남아 있다.

무릇 모든 것에는 때가 있음을, 그 때를 절대로 놓쳐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때가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것을 온 몸으로 말해 주며 물기 하나 남아 있지 않는 가을 단풍이 이 겨울을 견디고 있다.

위문에서 백운 산장으로 하산하는 길은 온통 하이얀 눈길이다.

아이젠을 차고 우리는 무적의 용사처럼 진격의 신처럼 아래로 아래로 하산하여 백운산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시래기볶음의 교본을 보여주는 미자씨의 시래기볶음과 겨울 시금치가 얼마나 달콤하고 부드러운지를 맛으로 이야기해 주는시금치 나물, 보온 밥통에 담아 오신 따뜻한 콩나물밥, 머핀님 아이디어에 힌트를 얻어 옥수수를 잔뜩 넣어 끓인 단호박 스프, 머핀님의 전용 특식 곰치 주먹밥과 미자씨의 전매  특허 멸치 견과 볶음, 푹 익어 흐물흐물 입에서 살살 녹은 무까지 넣어 만든 머핀님 오뎅국(나중에 하산 후 시식), 우리 엄마표 갓김치와 생선전과 고기전.  

아침이 시원찮았던 우리는 모두 폭풍 흡입하고, 뺏지와 공구한 휴대용 수저집을 나누고, 하루재를 지나 영봉으로 오른다.

하루재에서 영봉으로 오르는 길은 다시 오르막이다.

영봉에서 바라보는 인수봉은 새롭게 마음에 충격으로 다가온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새로운 눈길이 만들어지고, 눈길과 눈길이 아닌 길들이 어울려 인수봉은 영봉을 지켜보며 그 자리에 있었다.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끝없이 펼쳐지고 가까운 오봉은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고 멀리 도봉산의 봉우리들이 꿈처럼 이어지고 있다.

하루재에서 영봉까지 벗었던 아이젠을 다시 차고 본격적인 하산길에 접어 들어 육모정 탐방 지원 센터에 이른다.

그리고 빛의 속도로  우이령과 만난 지점을 거쳐 우이동 버스 정류장에 이른다.(1월 16일 목요일, 6시간 10km)

   늘 새롭게 다가오는 북한산,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동반자에 따라 날씨에 따라, 내 마음의 경사에 따라, 나의 즈음에 따라 언제나 새롭게 마음에 닿는 북한산을 이렇게 목요일마다 만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내 건강한 다리와 바운스바운스 빠담빠담 심장으로 이렇게 북한산에 닿을 수 있다는 것으로 오늘은 감사하고 행복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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