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일기예보는 목요일에 영하 9도 체감 온도 영하 12도라며 노약자는 실외 활동을 자제하라고 온통 난리이다.
모든 뉴스가 한파 경보를 뉴스의 첫번째 꼭지로 다루는 것을 보니 우리 나라가 태평성대인 듯 느껴진다.
'땡전 뉴스' 세대였던 나로서는 장성택 처형 이후 '땡김 뉴스'로 변해 버린 우리 나라 뉴스 덕분에 박근혜 대통령의 일정은 모르지만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황담함이 낯설어 당황하였는데, 이제는 매일 한파 타령이니 요순시절이 따로 없는 듯 싶어진다.
까치가 얼어 죽었다는, 아까운 것 얼어 죽을까 저어하는 지인들의 염려와 걱정 때문에 사설이 길었다.
완전 군장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두터운 바지에 가장 두틈한 웃옷에 고어택스 장갑까지 챙겨 들고 9시 도봉산역 1번 출구에서 머핀님과 미자씨를 만나 보문 능선을 향하여 도봉 탐방 지원 센터로 향한다.
지난 9월 말 삼목회 때 진경이가 처음 삼목회에 나오던 날, 미영이까지 모두 다섯 명이 함께 도봉산에 들었던 이후 처음 도봉산행이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라는 시조를 떠올리기에는 여름날 도봉과 한겨울 도봉은 다른 산인 듯 낯설게 다가온다.
도봉산 입구에서 주능선이 아닌 우이암으로 가는 보문 능선을 선택하여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보무도 당당하게 진격한다.
완전 군장, 보무, 진격 등의 군대 용어를 굳이 쓰는 이유는 한파 특보 때문에 우리가 군기가 바짝 들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얼어 죽지 않으려고 머핀님은 시금치국, 미자씨는 미역국, 나는 매생이국을 보온병에 각각 담아 왔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랴.
보문 능선에 제법 익숙해진 우리는 거칠 것없이 우이암에 일별하고 오봉샘을 지나 오봉을 향하여 나아간다.
차가운 공기 때문에 아무도 못말렸던 초미세 먼지가 모두 사라져 하늘은 눈이 부시고 시릴 만큼 푸르고 투명하며, 공기는 겨울 특유의 톡 쏘는 칼날같은 정결함과 매서움이 느껴진다.
오봉샘에서 잠깐 커피 한 잔 나누는 것밖에 전혀 휴식도 없이 오봉과 영봉이 보이는 봉우리에 오른다.
좌청룡 우백호가 아니라 좌 영봉 우 오봉, 아래로는 우이령을 넘는 눈길이 길게 선을 그리며 하얗게 펼쳐지고, 잎을 모두 떨군 겨울 북한산과 도봉산의 계곡들이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바람 빗자루에 눈이 쓸어져 모두 같은 방향으로 곱게 비질이 되어 있다.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기에 도반들을 살살 꼬여(?) 오봉 가운데 첫 봉우리에만 오르기로 약속하고 여성봉 쪽으로 방향을 잡아 처음으로 오봉을 오른다.
오봉의 첫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북한산의 모습은 머핀님 표현대로 깊은 산에 든 양 고즈넉하고 정결하고 그래서 쓸쓸하다.
'겨울산에 간다는 것은 행복한 외로움이다' 라는 어느 아웃도어의 광고 카피가 아니더라도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무장 해제된 겨울산을 만나는 것은 황홀한 외로움이다.
늘 우러러 보던 오봉을 오봉의 첫번째 봉우리에서 내려다 보는 호사를 누리고, 그 봉우리에서 미역국과 매생이국으로 얼어버린 속을 풀어버리는 호강을 즐기고, 북한산과도봉산의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을 보며 맥주 한 잔에 단호박과 쑥갓나물과 시래기나물까지 먹는 기쁨을 누렸다.
이제 도봉 주능선인 신선대와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을 향하여 나아간다.
도봉산의 뒷면답게 보문 능선에는 그리 많지 않았던 눈길이 제법 길게 이어지고 바람도 살짝 싸늘하게 불어오며 목재 데크와 쇠줄이 줄줄이 이어지며 능선을 오르락내리락 신선대를 향하여 나아간다.
포대 능선과 Y능선을 잠깐 바라보고, 아쉬움에 신선대를 여러 번 바라보다가 도반들의 의견에 따라 하산길로 접어든다.
도봉산의 앞면답게 이제 눈은 거의 볼 수 없고 가끔 복병처럼 흙길 아래 얼어붙은 빙판이 있어 살짝 긴장감을 주는 정도로 하산길은 평화롭고 고요하다.
마당 바위에서 커피 한 잔에 따뜻한 햇볕을 온 몸에 맞으며 귤을 나눈다, 옆에는 반려 동물처럼 고양이 두 마리가 길게 누워 있다.
산에 사는 들고양이가 나무에 오를 수 있어서 새까지 잡아 먹고 번식률이 높아 생태계를 파괴하는데 들개보다 더 위해하다는 여러 설명에도 불구하고 가방만 열었다 하면 등산객들 옆에서 떠나지 않고 울어 대는 그 애처로운 모습을 외면하기 힘들다.
드디어 도봉 탕방 지원 센터가 보이고 완전 원점 회귀 산행의 끝점이다.(1월 9일 목요일, 6시간 12km)
오전 9시 도봉산역에서 만나 오후 3시 다시 도봉산역에서 미자씨와 머핀님은 1호선으로 나는 7호선으로 각각 집으로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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