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일기

걸어서 청계천까지

꿈꾸는 식물 2014. 1. 15. 21:31

  어제 수업이 없었는데 내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여 걷기조차 힘들어 집에서 육수 만들기와 바지락죽 끓이기 등 모처럼 살림을 했다.

주선씨 표현대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 상황은 정리 되었는데 내 마음이 쉽게 정리되지 않아 길에 나선다.

주선씨 회사 생활 28년 동안  옆지기로 대부분 갤러리로 구경하며 살아 오면서 어제처럼 속이 상하고 약이 오르고 분한 적은 없었다.

3년 동안 서울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왕복 두 시간 가까이 길에 시간을 뿌려 가며 공을 들였는데, 이제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어 버렸으니, 미리 내 것이라고 3년 동안 몸과 마음과 정성을 쏟고 침 바른 사람은 얼마나 씁쓸할까 생각하니 내 마음이 짠하고 안타깝다.

수업 해치우고 빈 가방 들쳐 매고 12시 50분에 집을 나서 올림픽대교로 한강에 진입하여 잠실대교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여 서울숲을 지나 성수대교 거쳐 중랑천과 한강 합수 지점에서 중랑천 방향으로 오른쪽으로 접어 들어, 살곶이 공원 지나 청계천으로 방향 잡아 청계 광장까지 걸어, 시청역에서 집으로 향하는 2호선 전철에 오른다.

(1월 15일 수요일, 3시간 16분, 20km)

  

  한강 다리 : 올림픽대교 - 잠실철교 - 잠실대교 - 청담대교 - 영동대교 - 성수대교 

  중랑천 : 성수교 - 살곶이공원

  청계천 : 두물다리 - 무학교 - 비우당교 - 황학교 - 영도교 - 다산교 - 맑은물다리 - 오수간교 - 버들다리 - 나래교      

             마전교 - 새벽다리 - 배오개다리 - 세운교 - 관수교 - 수표교 - 삼일교 - 장통교 - 광교 - 광통교 - 모전교

 

청계천 다리는 걸으면서 외웠던 기억에 완전 100% 의존하였으니 신뢰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확인하지 않고 그냥 적는다.

10개씩 끊어서 내 나름 연상 기억법으로 암기 하였는데, 대충 다리 갯수는 맞은 것 같지만 기억력이 영 옛날같지 않아 자신이 없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으며,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며, 하늘 아래 늙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

지난 7월 혼자서 집에서 출발하여 청계천을 따라 걷다가 남산에서 봉사하고 내려온 머핀님과 버들다리에서 접선하여 닭 한 마리에 맥주를 마신 이후로 아마 이 길은 처음인 듯 느껴진다.

보행자 도로와 자전거 도로가 대부분 분리 되어 마음 편하게 걸을 수 있고, 잡초가 무성했던 주변이 개끗하게 정리되어 정갈하기까지 하다.

모처럼 날이 풀려서인지 라이더 못지 않게 베낭을 둘러맨 도보 여행자(?)들이 눈에 들어 온다.

얼음이 녹은 끝에는 어느 곳이든지 겨울 철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햇볕을 즐기며 수런수런 떠들어댄다.

하얗게 부서지는 햇볕, 살짝 살짝 녹아 사르르 부서지는 얼음 조각, 그 얼음 한 조각을 타고 한강 물결 따라 써핑을 즐기는 꾸러기 철새, 철새와 더불어 자기도 물새인 양 한강 가장자리에서 얼쩡저리는 철부지 비둘기들, 여유롭게 겨울을 만끽하는 오리 가족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설빔으로 갈아 입지 않고 부드러운 털로 정성껏 짠 숄을 두룬 남매의 모습, 지난 가을의 흔적을 차마 떨쳐 버리지 못하고 하이얀 꽃으로 피어 있는 갈대 갈대들, 철새를 위하여 청계천 사이 사이에 넣어둔 나무와 돌로 만든 새 전용 쉼터, 남이섬을 벤처마킹한 듯 하이얀 얼음산,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어요'를 보여 주기 위한 지구 온난화의 속도를 줄이자는 환경 보호 캠페인용 얼음산과 북극곰 몇 마리.

  IBK 본점이 눈에 들어 오자 내 마음은 갑자기 허둥대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의 무능함과 속수무책에 내 마음은 참담하고 그래서 나는 다시 쓸쓸해진다.

청계 광장에서 늘 길을 몰라 헤매다가 어리석게 북악이 있는 광화문 방향으로 걸었던 나는 처음으로 세련되게 남산 쪽으로 방향을 잡아 시청에서 지하철을 탔다.

식당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데, 길치인 나도 제법 똑똑하고 야물어졌나 혼자 대견하다.

진경이네 들려서 진경이가 애써 준비한 버섯전과 김치전에 하루를 마감한다.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라는데, 그럼에도 나는 동물적인 진지함으로 이 생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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