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이 소한네 집에 와서 얼어 죽었다는 옛말이 민망할 정도로 따뜻한 소한이었다, 지난 주말은.
주선씨의 감기 몸살 기운으로 토요일과 일요일 집에서 온 가족이 - 주선씨는 거실에서 나는 서재에서 승민이는 제 방에서, 각각 텔레비전을 보고 책을 보고 한국사 공부를하며- 따로 또 같이 방콕을 하였다.
침대 메트리스며 베개보 등 등 세탁물을 세탁기 세 번 돌리고, 로봇 청소기 풀어 가며 밀린 먼지와의 전투를 무사히 치루고, 수업 가볍게 해치우고, 드디어 밖으로 나왔다.
커피를 사기 위하여 롯데 잠실점까지 걸어서 다녀 왔다.
광진교로 도강하여 성내천 살짝 지나 올림픽공원 스쳐 롯데에 들렸다가 다시 잠실철교로 도강하였다.(1월 6일 월요일, 3시간 약 15km)
감기 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진경이가 온 얼굴을 퍼프로 가리고 기침을 하며 함께 걸었다.
수업 뒤끝이어서 수업이라 착각했는가? 오랜만에 함께 둘이 걸어서 반가웠는가? 아니면 내가 쓸쓸하고 외로웠는가?
아마 여러 가지 이유가 더불어 작용했으리라.
혼자만의 수다가 끝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며 진경이와 무관한 진경이가 묻지도 않는 말까지 해가며 -누가 물어 봤냐고? - 쓸데없는 말로 흐르고 흘렀다.
컴 앞에 앉는 지금 해가 또 하나 바뀌었는데 나이값도 제대로 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다.
따뜻한 날씨 때문인지 광진교와 잠실철교에는 도강하는 BMW족들이 걷고 타고 뛰고, 햇빛이 오소소 부서져 내리던 아기손같은 단풍잎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올림픽공원에는 빠알간 산수유 열매와 꽃사과가 겨울날 허약한 햇볕 속에 조용히 침잠하고 있다.
찬연하게 피어났던 벚꽃의 기억, 하이얀 벚꽃에 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던 가을날 벚나무의 붉은 이파리의 추억, 품위 있는 보랏빛으로 나를 사로 잡았던 오동나무의 고결한 꽃송이 송이, 올림픽공원을 하얗게 물들였던 칠엽수의 꽃물결 물결.
이 모든 기억을 안고 지금은 안으로 안으로 파고 들어야만 하는 겨울임을 자연은 깨닫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부질없는 망상과 미망에 빠져 있다.
롯데에 들려 4월까지 마셔야 하는 커피를 갈아 베낭에 넣고 다시 걷는다.
출구 전략을 외치는 주선씨 덕분에 지하 1층에서 지상으로 오르지도 못하고 공짜로 두 잔 얻은 커피에 옥수수빵을 사서 푸드코트에서 먹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하려고 2층 여성복 매장에 들려 매대에 놓인 옷들에게도 눈짓 한번 주지도 못하고 내려 왔다.
2시 20분에 진경이를 만나 걷기 시작했는데 5시가 지나서인지 동지를 갓 지난 해가 저무려고 땅거미가 내릴 준비를 한다.
미망에 빠져 있음을 깨닫고 대오각성까지는 못하더라도 내 나이만큼 살고 싶은데, 늘 나는 나쁜 패를 들고 있는 것만 같아 낭패감과 열패감에 어쩔 줄 모른다.
무리수를 두지 않고 내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살아 내려고 하는데, 나는 늘 내 삶이 낯설기만 하다.
어두워져 가는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는 거리에서 방향을 잃고 서있는 어린 아이가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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