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일기

아차산 - 망우산

꿈꾸는 식물 2014. 4. 21. 02:10

  어제는 오전 10시 30분에 일을 시작하여 밤 11시까지 으로 떠들어대는 하루였다.

오후 7시부터는 급기야 눈이 침침하여 글씨가 어른어른 잘 보이지도 않는다.

눈은 침침하고 목은 잠기고 마음은 어수선하고, 자꾸만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9시 마지막 수업은 예쁜 1학년 귀염둥이들이어서 남은 최후의 힘까지 쏟아 붓고 나니 완전 탈진 상태이다.

주선씨가 미리 시켜 놓은 치맥으로 한숨 돌렸지만 지치고 피곤하여 쉽게 잠은 오지 않고, 제주 기행 블로그를 대충 몇 자 적을 여력과 여유는 없고, 눈이 아파서 책은 읽을 수 없고, '정도전'을 보았으면 했지만 텔레비전은 온통 세월호 화면으로 그득하다.

머핀님께 카톡 문자 보내고 답을 기다리다 늦게 잠이 들었는데도 일찍 잠이 깨어 집안일 해치우고 병문안을 다녀 왔다.

세상은 온통 파르르 떨리는 연두빛 향연인데 병원은 온통 무겁고 고요한 백색이다.

병상 앞에 걸려 있는 '50'이라는 숫자만 노려 보고 또 노려 보다가 돌아왔다.

뇌출혈로 쓰러져 대동맥이 터져버린, 골든타임을 놓쳐 뇌속에 피가 잔뜩 응고하여 수술도 할 수 없는, 이제 심폐생술 여부까지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억울하지 않고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는 과연 몇 살일까?

그 나이가 몇 살인지 모르지만 '50'은 아직 억울하고 납득할 수 없고 그래서 이해할 수 없다.

자꾸만 쳐지는 내가 싫어 억지로 빈 베낭 매고 2시에 집을 나서 아차산에 지나 용마산 거쳐 망우산까지 다녀 왔다.

망우산 아래 배꽃이 떠올라 교문사거리로 하산하여 원각사까지 대로를 타박타박 걷다가 버스로 돌아왔다.(4월 20일 일요일, 2시간 30분, 12km)

  각오는 했지만 아차산은 동네 뒷산답게 온통 가족 상춘객으로 넘실거려 도저히 걷기조차 힘들다.

가족 상춘객을 피해 워커힐 방향으로 가능한 멀리 진행하여 아차산으로 들어가 대성암을 지나 아차산 정상으로 향했다.

주말에는 길을 잘 모르는 산을 찾아 탐방객 따라 길을 익히는 산행이 제일 좋은데 주말마다 예기치 않는 일이 생겨 새로운 길을 익히고 배우는 조각 이불 맞추는 퍼즐 산행을 하지 못했다.

가족 탐방객 뒤를 졸졸졸 따라 가다가 틈이 나면 앞으로 치고 나가며 걸었다.

거의 대부분 진달래는 시들어 버렸는데 그늘진 곳에는 늦게 피어난 철지난 진달래가 천덕꾸러기처럼 가여워 안쓰럽고, 우아한 분홍빛 산철쭉이 마음에 다가오고, 이제는하이얀 조팝꽃과 연두빛 이파리의 세상이다.

한식이 지난 탓인지 망우산 유택들은 깨끗하게 이발을 끝내고 하얀 노란 보랏빛 제비꽃과 연두빛 이파리와 하이얀 꽃이 조화로운 조팝꽃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차산에는 몇 그루의 산벚나무가 뭉게뭉게 벚꽃을 매달고 있었는데 망우산 벚나무는 한 그루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고 깨끗하게 벚꽃답게 끝을 내고 없었다.

그래서 연두빛 이파리를 매달고 나를 기다려준 하이얀 배꽃이 눈물겹게 반갑고 고맙다.

울타리로 심어 놓은 겹겹이 겹꽃인 명자꽃은 붉은 울음을 쏟아내고, 하이얀 배꽃이 파르르 연두빛 여리디 여린 이파리를 달고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하이얀 배꽃과 눈을 맞추며 마주 서서 그렇게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진다.

삶에는 얼마나 많은 허방다리가 숨어 있을까?

얼마나 더 살아야 그 삶의 허방다리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고요는 욕망을 비운 뒤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마음이 번잡하고 욕심으로 가득 차 있으면 고요는 들어서지 못한다.

욕망을 비운 마음 자리에 그윽하게 서리는게 바로 고요다.

그런 까닭에 사람은 삶에의 의지가 아니라 고요에의 의지 때문에 더 고결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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