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일기

구리 둘레길

꿈꾸는 식물 2013. 6. 4. 19:53

  모처럼 혼자 걸었다.

목요일 도봉산 걷고 금요일 집에서 목감기로 약에 취해 종일 비몽사몽 넋을 잃었더니 몸과 마음이 황폐해져서 아들 등교 시키고 10시가 지난 늦은 시간에 집을 나섰다.

멀리 갈 수 없어서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거쳐 구리 둘레길 교문 사거리 지나 왕숙천 따라 한강 향해 걸어 돌아오기로 했다.

결국 5시간 19분 동안 25km를 걸었다.(6월 1일 토요일)

늘 삼목회 도반들과 걷거나 아니면 언제나 머핀님과 함께였기 때문에 정말 모처럼 혼자 걷고 또 걸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 아차산 입구를 지나 워커힐 아파트까지 걸었던 기억이 선명한데 벌써 철쭉도 다 지고 생태공원에는 붓꽃과 창포꽃이 한창이다.

초록빛 단풍잎은 붉은빛 프로펠러 씨앗을 달고 날아갈 꿈을 꾸느라고 꽃보다 더 곱게 피어나고, 하얀 마가렛과 노오란 이름도 잘 모르는 꽃들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멀리 보이는 암사대교는 상판 얹는 작업이 끝나고 마지막 마무리 공사에 분주하다.

가족 단위 등반 행사로 온 가족이 총 출동한 듯 명찰을 달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것도 힘이 든다.

망우리 공원 묘지에는 산벚꽃도 보랏빛 하얀빛 제비꽃도 이제 모두 흔적도 없이 다 사라져 버리고, 노오란 이름 모를 꽃들만이 흐드러지게 피어 유택을 고즈넉하게 지키고 있다.

산벚꽃이 진 자리 자리마다 버찌가 매달려 조금씩 붉은 빛으로 익어가고 있다.

망우산에서 내려온 교문동 배밭에는 그 우아한 배꽃이 지고 작은 매실같은 배가 송알송알 매달려 가을을 꿈꾸고 있다.

언젠가 유진이랑 우연히 만났던 그 하얗고 우아한 배꽃과 배밭을 둘러싼 붉은 명자꽃의 기억이 지금도 뚜렷한대, 지금은 가을을 향하여 익어갈 시간.

  교문시장에서 주선씨를 위하여 마를 사서 베낭에 담고 구리역을 지나 왕숙천으로 들어간다.

왕숙천에는 라이더들과 캠핑족들, 일요 축구회와 일요 야구회 세상이 펼쳐진다.

왕숙천 위로 뛰어 오르는 물고기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근심 처량한 해오라기에 눈을 주기도 하면서 한강으로 접어든다.

뒤로 멀리 검단산과 운길산 예봉산 예빈산을 버리고 앞으로 아차산을 향하여 걸어간다.

여름을 머금은 바람은 살랑살랑 내 귓가를 스치고, 부드러운 공기는 나를 나직하게 다독다독 어루만져 준다.

  '사는 게 별 게 아니야'라고 자신있게 말할 만큼 나는 아직 내 삶을 아직 치열하게 살아내지 못했다.

'사는 게 별 게 아니야'라고 말할 만큼 뜨겁게 내 삶을 온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아내고 싶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람이 내게 나지막하게 이야기한다.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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