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일기

서울 성곽 맛보기 도보

꿈꾸는 식물 2013. 3. 27. 16:39

  지금부터 30년 전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전라북도 군산시 군산여고에 초임 발령을 받았다.

고등학교와 대학 동창임에도 불구하고 얼굴도 알지 못했던 미영이와 그렇게 그곳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선배 교사들의 텃세 속에서 함께 나눈 초임 교사의 애환, 학교를 갓 졸업한 새내기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낯설음, 전주에서 군산까지 출퇴근을 같이 하며 머리를 서로에게 기대며 나누었던 달콤한 쪽잠.

미영이가 결혼하고, 내가 사대부고로 옮기고, 또 내가 결혼하여 학교를 떠나고, 가끔씩 잊혀질만 하면 만났던 미영이와 근 30년만에 함께 걸었다.

아들 덕분에 서울살림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미영이와 시청에서 만나 숭례문에서 서울 성곽을 따라 남산 지나 광희문 거쳐 동대문 찍고 낙산공원에서 동묘 방향으로 돌려 정업사는 놓치고 청룡사와 동망대 지나 동묘 보고 신당에서 헤어졌다.

발을 맞추어 보며 4시간 20분13km를 걸었다.(3월 22일 금요일)

  얼마 동안의 휴직은 있었지만 30여 년을 현직 수학 교사로 살아온 미영이와, 결혼 초 약간의 휴지기를 제외하고 끊임없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온 내가 그 세월을 이야기 한다.

어떤 부분은 비슷하게 또 어떤 부분은 다르게 느끼고 반응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삶과 상처와 꿈을 안고 살아온 우리가 오늘 이렇게 만나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느릿느릿 길을 걷고 있다.   

늘 차분하고 침착하고 올곧은 미영이와 미영이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미영이가 살아온 삶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

함께 견뎌냈던 그 세월을 뒤로 하고 우리는 얼마나 걸어 왔으며,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는가?

함께 나눴던 그 시간을 뒤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삶의 질곡을 만났고, 얼마나 많은 삶의 허방을 디디며 살아 왔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첫 발령을 받고, 다른 학교로 옮기고, 결혼하여 학교를 떠나 서울로 삶의 뿌리를 옮긴 지 벌써 28년이 흘렀다.

그 날 그 시간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걸어 왔는가?

그 날 그 시간으로부터 나는 얼마나 흘러 흘러 변하였는가?

상처 없는 영혼을 꿈꾸었던 내가 이제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로 사유의 지평이 넓혀졌다면 그것은 축복일까? 아니면 재앙일까?

'언어는 사고의 문'이어서 말하지 않으면 사유도 없다고 큰소리 치던 내가 소리 내어 말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속으로 견뎌내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성숙일까? 아니면 지난한 아픔일까?  

  젊은 느티나무같던 푸르른 20대에 만났던 우리가 이제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연꽃 만나고 오는 바람같은 50대에 이렇게 다시 만났다.

함께 같은 길을 걸으며 지나온 각자의 삶의 궤적을 내보이고 또 새로운 삶의 궤적을 그리며 나아가겠지.

앞으로 두 걸음 그리고 뒤로 한 걸음, 또 앞으로 두 걸음 그리고 뒤로 한 걸음.

엄격한 자기 성찰과 엄중한 자기 비판의 마음을 잊지 말기를, 그러나 늘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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