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현충원 벚꽃 놀이날이다.
함께 걷기로 했던 머핀님의 무릎이 문제를 일으켜 결국 혼자 걷게 되었다.
동작역 8번 출구에서 현충원으로 진입, 온통 꽃세상인 현충원을 3km 정도 오르락 내리락 돌고, 현충원 뒷산인 서달산 거쳐 총신대로 내려 까치산으로 진입, 까치산 따라 걸으며 관악산으로 들어가서 연주대 지나 과천 향교 방향으로 내려와 4호선 과천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혼자 마음껏 걸었으니 5시간만에 16km를 걸었다.(4월 19일 금요일)
혼자 걷는 길이라서 집에서 조금 늦게 나왔다.
보통 동작역 2번 출구로 나와 밖에서 육교를 건너는데, 8번 출구라는 동작역 안내를 성실하게 따르다 보니 지하철 역사에서 9호선 환승 게이트까지 통과하여 긴 회랑 같은 복도를 지나 국립 현충원 정문에 도착하였다.
온통 분홍빛 구름에 둘러싸인 서달산과 현충원 그리고 연분홍빛이 흐드러진 아름다운 반포를 멀리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아쉽다.
차라리 2번 출구로 일찍 나와서 맑은 공기와 만나는 것이 나으리라.
현충원이 올해 서울 벚꽃의 종결자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연분홍빛 구름, 하이얀 꽃구름, 치렁치렁 하이얀 꽃구름을 매달고 늘어진 길을 걸어가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자신이 그대로 풍광이 된다.
이쪽 벚꽃길이 아름다워 걷노라면 저쪽 벚꽃길이 내 시선을 잡아 끌며 놓아 주지 않고, 벚꽃에 빠져 넋을 놓고 있노라면 하이얀 목련이 나폴나폴 나비같은 손짓으로 내 영혼을 끌어 당긴다.
치렁치렁 하이얀 댕기를 길게 늘어 뜨린 벚꽃에 취해 휘적휘적 길을 걸으니 눈앞에 호국 영령들의 유택이 펼쳐지고 참배객을 위한 조포 소리가 들린다.
내가 지금 무의미하게 흘러 보내는 오늘이 그대들이 꿈꾸고 기다렸던 내일이었음을, 나의 오늘을 위하여 그대들은 그대들의 내일을 기꺼이 희생하였음을!
오른쪽 도로로 한바탕 오르다가, 유택 사이로 다시 내려와서 왼쪽 방향을 다시 걷는다.
수령을 짐작하기 힘든 아름드리 수양(능수) 벚나무들이 하이얀 댕기와 연분홍 댕기를 길게 늘어 뜨리고 투명한 봄날 아침을 맞는다.
많은 사진 동호회 회원들이 배불뚝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똑딱이를 가져 좀 더 벚꽃에 가까이 다가가는 내 모습도 그대로 풍광이 되는 듯 옆모습과 뒷모습을 찍는다며 조금 더 길게 디카를 들고 있으라는 부탁을 해댄다.
현충원 입구를 중심으로 왼쪽은 오른쪽보다 햇볕이 상대적으로 적어서인지 노오란 개나리가 아직 개화의 절정을 유지하며 흐드러지고, 치렁치렁 댕기를 늘어뜨린 벚꽃이 꽃송이도 마악 아침에 머리를 단정하게 빗고 댕기를 두른 듯 또렷또렷 분명하다.
온통 목련꽃 세상인 육여사 묘소를 지나, 노오란 꿈길과 연분홍 구름길을 걸어 걸어서 현충원 쪽문을 빠져 나와 서달산으로 진입한다.
총신대로 향하는 서달산 길은 온통 연두의 세상이다.
오른쪽에 현충원의 초록 팬스를 두고 연분홍 벚꽃을 바라보고, 왼쪽에 꽃보다 더 아름다운 연두빛 잎들이 나오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서달산을 조금 걷다가 온통 벚꽃 세상인 총신대 방향으로 내려온다.
총신대를 나와 육교를 지나 주유소 골목으로 들어가면 조그만 야산 비슷한 언덕을 만나니, 까치산의 들목이다.
나지막한 언덕을 오르면 왼쪽으로 까치산 생태 공원 표지가 보인다.
놀랍게도 그 곳도 온통 벚꽃 세상이다.
몇 번이나 이 길을 걸었는데 까치산에 이렇게 아름다운 연분홍빛이 숨어 있는 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동작충효길로 이름 지어 동작구에서 온갖 정성을 들여 가꾸는 듯, 벚나무가 수령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는데도 벚꽃이 겹겹이 피어 피어서 따뜻한 봄볓에 마음껏 그 자태를 화려하고 농염하게 뽐내고 있다.
희망 근로를 하시는 어떤 분이 내 디카에 비친 벚꽃을 보시며 자신의 그동안 노력의 결실이라고 기뻐하며 자랑스러워 하신다.
그 모습에 나도 마음이 즐겁고 흐뭇하고, 아름다운 동작 충효길을 만들고 가꾸어 주신 여러 분들이 이 봄날 눈물겹도록 고맙다.
이 아름다운 길을 여러 길동무들과 함께 오지 못해 너무 아쉽다.
관악산이 아니라 현충원에서 시작하여 관악산 둘레길 걸어 서울대 앞에서 끝낸다고 했으면 여러 길동무들이 따라 나섰을 것을 나 혼자 이 아름다운 길을 독차지한 듯 싶어너무 속이 상하다.
서울대로 내려 가는 그 벚꽃이 흩날리는 길에서 올 봄의 마지막을 찍었으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언제나 한 발씩 늦게 떠오르는 좋은 생각이 내 나이를 떠오르게 한다.
옛날에는 반짝반짝 빛났던 주선씨가 갑자기 일 처리에 버벅거리는 것을 보며 쉰이 훌쩍 넘은 나이를 떠올렸는데, 나 역시 세월을 어이 하랴.
혼자는 관악산 둘레길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오른쪽으로 빠지는 관악산 둘레길을 바라보며 나는 연주대로 방향을 잡는다.
혼자서 걷기도 했고, 몇몇 길동무와 걷기도 했고, 우리 땅 번개로, 이수회 걷기 행사로 관악산 둘레길을 걸었다.
연주대로 향하는 길에는 붉은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언젠가 봄날 혼자 관악산을 왔을 때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진달래에 마음을 빼았겼던 기억이 새롭다.
작년인가, 머핀님과 함께 조카 녀석들을 오후에 픽업해야 했기 때문에 빛의 속도로 관악에 오른 이후에 올해는 처음 관악에 드는 듯 모든 것이 새롭고 반갑다.
멀리 보이는 그리운 북한산, 눈 아래 펼쳐지는 한강과 동작대교를 비롯한 한강 다리들, 넉넉히 쏟아지는 봄빛 속에서 빛나는 관악의 연봉들, 점점 다가오는 연주대의 붉은 등이 모두 처음인 양 가슴이 아프도록 뛴다.
연주대를 지나 석가탄신일 준비로 온통 들을 매달고 있는 연주암을 지나 과천 향교로 방향을 잡는다.
붉은 진달래와 연두빛 새 이파리들이 봄날의 계곡 물소리에 젖어 있다.
오랜만에 혼자 길을 걷는 듯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떠오르다가 결국 아무 생각도 남지 않는다.
그리고 마알간 영혼으로 돌아가는듯, 내 영혼이 투명하게 씻기우는 듯, 내 육신과 영혼의 물기가 모두 빠져 버리는 듯, 착각이라고 비웃어도 어쩔 수 없고 별 수 없는 이런 상태를 나는 사랑한다.
여기도 벚꽃 세상인 과천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