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기

한라산 등반(2) : 돈내코에서

꿈꾸는 식물 2013. 5. 21. 02:32

  제주도 기행 두 번째 날이다.(5월 10일 금요일)

밤새 내리는 비로 돈내코 - 영실 계획을 변경하려고 했는데, 기적같이 새벽에 날씨가 활짝 갰다.

8시 20분 서귀포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돈내코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주선씨랑 영실 - 돈내코 코스를 탐방했는데, 이번에는 머핀님 생각대로 돈내코 - 영실로 탐방하기로 했다.

8시 50분 돈내코에 도착, 놀며 놀며 영실로 내려오니 5시 20분, 4시 30분 서귀포행 막차는 떠나 버리고, 5시 35분 제주 막차는 아슬아슬하고......

  돈내코 버스 정류장에서 탐방 지원 센터로 오르는 길은 영면한 이들의 유택이다.

전국 도처에서 제주로 왔던 이들이 살아 생전의 출신도별로 나누어져 영면하는 그곳에는 노란 민들레와 동이나물, 보랏빛 제비꽃과 노란 태백제비꽃이 적요 속에서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지난 밤 내렸던 비에 온 세상이 깨끗하게 반짝반짝 빛을 내며 우리 앞에 펼쳐진다.

연두빛 숲과 에메랄드빛 하늘, 뭉게뭉게 하늘하늘 피어 오르는 하이얀 구름, 코발트빛 바다와 이른 봄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서귀포시, 부드럽고 온유한 공기, 상큼하고 서늘한 숲길, 뚝뚝 떨어진 붉은 동백꽃, 졸졸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남의 둥지에서 자라는 새끼들에게 들려주는 처절한 뻐꾸기 울음 소리, 나뭇가지를 흔들며 달려가는 연두빛 달콤한 오월의 바람.

이 모든 것이 오롯이 우리 차지였으니 얼마나 큰 축복이며 행복인가?

그러나 이것은 단지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숲이 끝나고 남벽으로 나아가는 툭 트인 들판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붉은 진달래의 울음은 경탄과 감탄과 탄성이었고 환희 그 자체였다.

어제 진달래 대피소에서 보았던 진달래와는 차원이 다른 겹겹이 붉은 울음이 투명하도록 높은 파아란 하늘 아래 펼쳐지고 있다.

하늘에는 새털구름과 수직으로 날아오르는 비행기로 인한 비행운 - 왜 그렇게 비행기가 많이 지나 가는지 모르겠다. 혹 조종사 양성을 위한 비행 학교의 실습 시간인지 모르겠다.- 이 긴 선을 그리며 화판 가득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바람을 피하여 진달래는 낮은 포복으로 바짝 엎드려 눈에 띠지 않는 작은 키를 불타는 울음으로 목놓아 울고 있다.

그리고 원시의 한라산 남벽이 우리를 마주한다.

하늘, 구름, 비행운, 진달래, 남벽 가운데 가장 으뜸은 물론 남벽이다.

웅장하고 장엄한, 날카롭고 부드러운, 뽀족뽀족 감수성이 예리하면서도 토닥토닥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남벽을 앞에 두고 맥주 잔을 나누며 하염없이 앉아 있다.

그 거대한 바위벽에 기대어 무엇을 위로 받고 싶었던가?

그 원시의 남벽과 마주 앉아 무엇을 토로하고 싶었던가?

혹 진달래처럼 붉은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차마 터뜨리지 못할 통곡으로 그렇게 앉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윗세오름에서 해바라기하며 따뜻한 커피 한 잔에 온 몸과 마음을 흐물흐물 내려 놓는다.

그리고 영실로의 하산길이 이어진다.

주선씨랑 이 길을 오를 때는 온통 철쭉 세상이었다.

우연히 오른 6월의 영실이 마침 철쭉제 첫날이어서 병풍바위와 만물상(?)과 어울려 흐드러진 철쭉에 완전 취했었다.

오늘의 하산길은 멀리 보이는 온갖 오름의 연두빛이 절정이다.

연두빛 들판에 봉긋봉긋 솟아 있는 나지막한 오름은 그 존재만으로도 신비와 경탄이다.

오른쪽에는 구상나무와 주목 군락이 왼쪽에는 병풍바위와 온갖 동물을 떠올리게 하는 만물상이 초록빛에 놓여 있다.

머핀님은 만물상에 하나하나 이름을 지어 주며 즐거워 하고, 나는 그런 머핀님을 바라 보며 즐거워 한다.

  우여곡절 끝에 제주로 가는 관광 버스를 얻어 타고 제주로 나갔다.

친절하나 무조건 쭉 가라는 안내로 대략 난감한 상황에 빠졌지만 친철한 택시 기사님의 아내 덕분에 위기를 탈출, 어렵게 서귀포 숙소 민중각으로 돌아왔다.

차라리 영실에서 서귀포까지 택시를 타는 것이 합리적(택시비 약 2만원)이었다는 머핀님의 뒤늦은 확인은 다음에 쓸 수 있는 지혜가 되리라.

숙소 근처에서 돼지갈비에 국수를 먹으며 하루를 접는다.

머핀님 말씀에 따르면 절대로 이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머핀님 생애에서 최초로 고기와 맥주를 조금이지만 남긴 부끄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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