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목회

지리산 화대 종주(1)

꿈꾸는 식물 2013. 5. 5. 17:18

  산불 예방을 위한 지리산 입산 금지가 해제되는 5월 1일(수요일)부터 5월 3일(금요일)까지 2박 3일 지리산 종주를 하다.

화대 종주란 화엄사에서 시작하여 대원사로 내려오는 종주로 화엄사 대웅전에서 시작하여 대원사 지나 차부까지 46km에 달하는 긴 탐방로이다.

재작년 10월 지리산에 발을 담그기 시작, 작년 5월에 지리산의 부름을 잊지 못해 다시 왔고, 작년 10월에는 머핀님의 사정으로 오지 못햇으니 1년만에 지리산에 들었다.

용산역에서 새벽 5시 20분에 출발하는 여수행 KTX에 탑승하여 구례구에 8시 19분 도착, 택시로 화엄사로 이동하여 8시 50분에 종주를 시작한다.

 

      첫날(5월 1일) : 화엄사 - 연하천(17.5km) : 노고단에서 점심

      둘째날(5월 2일) : 연하천 - 장터목(12.6km) : 세석에서 점심 

      세째날(5월 3일) : 장터목 - 대원사(15.4km) : 치밭목에서 아침

 

대원사 못미쳐 가게에서 가맥을 하고 차부에 도착하여 3시 30분 버스로 원지로 이동(약 40분 소요), 금요일이어서 서울행 차표가 없어서 두 시간 기다렸다가 6시 10분 고속버스에 승차, 3시간 30분 달려 9시 40분 남부터미널 도착, 10시 20분에 무사히 집으로 귀환, 속세로 복귀했다.  

머핀님과 이미자님과 함께 했던 2박 3일 동안 지리산의 연두빛 물결에 나도 마악 잎을 내미는 작은 이파리가 되고 싶었고, 보아 주는 사람이 없어도 온 몸과 마음으로 피어나는 한 송이 들꽃이 되고 싶었고, 향기롭고 부드러운 한 줄기 바람이 되고 싶었다. 

  부드러운 연두빛 가운데 화엄사는 고즈넉한 적요 속에 막 빗질을 끝낸 정결함과 정숙함이 흐른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기 위한 연등이 절 입구부터 온갖 화려함을 내뿜지만 화엄사가 지닌 세월의 무게에 눌려 부박하지 않다.

지리적인 이유로 쉽게 화엄사에 들리지 못하는데 오늘 걸어내야만 하는 탐방 거리 때문에 화엄사 대웅전에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하고 연기암 방향으로 걷기 시작, 그 악명 높은 코재를 향하여 출발한다.

코가 닿을 정도로 급경사라는 코재, 너덜너덜 돌과 바위로 만들어진 너덜길을 오른쪽에 계곡을 두고 걸어간다.

올해 유난히 비가 많았기 때문일까?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는 서로 높이가 다른 물의 낙차로 오케스트라의 조화로운 화음을 만들어 내고, 굽이칠 때마다 소용돌이를 치며 웅장한 크라이막스를 연출하고,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은 그냥 그대로 곳곳에 작은 폭포를 만든다.

바위 틈을 뚫고 흐르는 석간수 아래에서 반바지로 갈아 입고, 온 몸에 봄볕을 가득 받으며 봄빛에 취해 허허롭게 걸어 간다.

투명한 에메랄드빛 하늘 아래 이제 막 잎이 돋기 시작하는 이파리들은 작은 손을 흔들며 반짝이고, 지나온 너덜길은 적요 속에 잠겨 있고, 지나갈 너덜길은 길게 이어지며, 머핀님의 목소리는 꿈결같이 아득하다.

하얀 제비꽃과 보랏빛 제비꽃, 노오란 애기똥풀과 복수초,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연분홍빛 진달래, 그리고 이름 모를 야생화와 꽃이 좋아 산에서 사는지도 모를 이름 모르는 새의 울음 소리가 온 산에 가득하다.

근로자의 날이기 때문인지 성삼재에서 올라온 근로자 탐방객들과 중간고사를 끝내고 테마 소풍에 나선 학생들로 학생 탐방객들로 노고단 대피소는 장터목 못지 않게 사람들이 많다.

시간 계산을 잘못하여 너무 꽝꽝 얼린 맥주 때문에 아쉽게 목만 축이며 어설픈 술꾼(?)처럼 이미자님이 애써 준비해 오신 치킨만 축내고 12시 50분 노고단을 떠난다.

코재를 무사히 올라 왔고 작년 벽소령까지도 걸었으니, 한 구간 더 짧은 노고단에서 연하천까지도 잘 해내리라 믿어 본다.

노고단 고개를 지나니 장터 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원래 지리산본연의 고요함이 우리를 기다린다.

오르면 오를수록 봄의 빛깔은 점점 사라져 연두빛은 아득하고 온통 갈색이 우리를 기다린다.

그래도 가끔 만나는 연분홍빛 진달래가 있고, 진한 녹색의 구상나무 있고,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봄을 꿈꾸는 나무들이 있어 갈색에서 연두를 읽어 낸다.  

보랏빛인지 푸른빛인지 늘 헷갈리는 현호색과 군락지를 이루며 연하천이 멀지 않았다고 말해 주는 얼레지의 군락지가 펼쳐진다.

합장하고 서있는 여승같은 모습의 꽃망울이 꽃으로 피어나며 완전히 홀딱 뒤집어 속살을 다 드러내는 연보랏빛 얼레지는 여전히 신비롭다.

속살을 다 드러내 방자한 느낌을 연출할 듯하지만, 검은 빛의 얼룩달룩한 커다란 잎의 미친 존재감에 온 몸을 다해 모든 것을 다 보여 주지만 얼레지는 단정하고 정숙하며 조금은 가여워 마음까지 애잔하다.  

나를 보아 달라고 온 몸으로 시위하는 듯하는 그 작고 연약한 보랏빛 얼레지를 보면 '어린 왕자'의 '가시 달린 장미'가 생각난다.

'가시' 하나 달랑 달고 강해 보이고 싶어하는 어린 왕자의 '장미', 커다란 잎에 매달린 조그만 보랏빛 꽃에 지나지 않는데 자신을 홀딱 뒤집어 보이며 남들이 보아 주기를 온 몸으로 갈망하는 얼레지.

문득 마음이 서늘해지며 마음 한 귀퉁이가 아파 온다.

  멀리 연하천 대피소가 보인다.

그리고 바람이 불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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