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대 종주 세째날이다.
장터목에서 출발하여 천왕봉 일출을 만나고, 치밭목에서 아침을 먹고 대원사로 하산, 원지에서 서울 가는 버스를 탔다.
오전 4시 30분 장터목을 출발하여 천왕봉 지나 9시 치밭목 대피소 거쳐 유평 삼거리에 오후 1시 20분 도착, 가맥 가볍게 마시고 대원사 거쳐 차부에서 3시 30분 차로 원지로 이동, 4시 20분에 원지 도착, 만차여서 2시간 기다렸다가 6시 10분 서울행 진주발 버스에 탑승했다.
3시간 30분 정도 걸려 서울 남부 터미널에 도착, 길고 긴 화대 종주를 마무리한다.
첫날(5월 1일) : 화엄사 - 연하천(17.5km) : 노고단에서 점심
둘째날(5월 2일) : 연하천 - 장터목(12.6km) : 세석에서 점심
세째날(5월 3일) : 장터목 - 대원사(15.4km) : 치밭목에서 아침
일출 예정 시간은 오전 5시 35분이어 작년에 일출을 기다리며 이를 두들겨 떨어본 경험이 있는 우리는 장터목 탐방객 가운데 제일 늦게 출발하여 4시 30분에 장터목을 떠나 천왕봉을 향하여 걸었다.
어둠에 눈이 익지 않아서 처음에는 헤드렌턴을 켰지만 곧 여명을 느낄 수 있어서 밝아오는 여명 속에서 그믐에 가까운 달을 바라보며 걷는다.
천왕봉에 가까워질수록 상서로운 바람은 하늘에서 불어 오고, 살짝 살짝 얼어버린 등산로에 하얀 서릿발이 보이고, 내 오른쪽의 조각달은 점점 높아지며, 내 왼쪽의 하늘은 점점 보랏빛을 띤 붉은 빛으로 타오른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는 10분 정도 일출을 기다렸고, 해님과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5시 35분을 꼬옥 맞춘 머핀님이 천왕봉에 오르자 해가 뜨기 시작한다.
구름 한점 없이 깨끗했던 작년 일출과는 달리 올해 일출은 구름을 뚫고 나오는 해 중심부에 몇 겹의 해무리처럼 구름이 가늘게 걸려 있다.
몇 겹 구름을 상처처럼 지닌 해가 점점 그 찬연한 모습을 드러내며 미자씨도 뭔가를 간절하게 빌고 있다.
삼대가 공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을 두 해째 계속 보는 기쁨 속에 지리산 천왕봉 산신령님께 온 마음으로 바라고 바란다, 내 하나뿐인 소망을.
늘 인간이 바글거리는 천왕봉에서 서둘러 인증샷을 찍고 우리는 반대쪽 대원사를 향하여 하산을 시작한다.
천왕봉을 뒤로 하고 대원사를 향하여 가는 길은 고즈넉하고 애잔하며 그래서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대부분 사람들이 백무동이나 중산리로 하산을 하기 때문에 우리처럼 대원사 구간으로 가는 사람은 우리 일행과 서울에서 오셨다는 60대 남자 분과 젊은 아가씨밖에 없었다.
겹겹이 늘어서 있는 지리산 연봉에 방금 떠오른 새로운 태양이 그 빛을 쏟아 붓고, 잠에서 깨어난 청아한 새의 노랫 소리는 온 산에 가득하다.
많은 철재 다리와 목재 데크로 새롭게 만들어진 하산 길에서 머핀님은 '밀과 보리가 자라네. 밀과 보리가 자라네' 동요를 부르고 또 부르신다.
일주일이나 한의원에 다니며 물리 치료를 받고 드디어 해낸 화대 종주이니 기쁨과 자랑스러움이 얼마나 극에 달했으랴?
하산인데 왜 올라 가느냐는 미자씨의 애교 있는 투정처럼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며 치밭목으로 길은 이어진다.
써리봉에 올라 바라보니 우리가 거쳤던 지리산의 수많은 연봉이 눈앞에 꿈인 듯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초록빛 연두빛 산죽이 도열한 길을 따라 의장대 사열을 받는 것처럼 내려 오는가 했더니 초록빛 계곡물이 햇볕 속에서 햇빛을 투명하게 받으며 흐르고 있다.
늘 사람이 그리운 치밭목 대피소 소장님과 몇 몇 탐방객들과 남은 고기를 굽고 이야기 나누며 짧은 인연을 맺었다가 그렇게 풀어 버린다.
이제 본격적인 하산이다.
투명한 물빛, 향기롭고 부드러운 공기,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연두빛 나무 도 나무들,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많이 피어 잇는 온갖 야생화의 무리들.
오묘한 현호색과 보랏빛 신비한 얼레지 군락지, 노오란 동의 나물과 노란 금괭이눈, 노랑 제비꽃과 하얀 태백 제비꽃, 하얗게 무리 지어 피어 있는 개별꽃, 연초록 잎에 연분홍 방울이 조롱조롱 매달린 금낭화, 엄마 집에 많이 있는 하늘 매발톱......
노란 동의나물과 분홍빛 금낭화가 두고 가기가 아쉬울 정도로 내 눈과 마음을 사로 잡는다.
올망졸망 싸리꽃이 뒤를 이릉 준비를 하고, 연두빛 작고 어린 손을 내민 감나무에서 곧 하얀 감꽃이 피어 나겠지.
대원사 하산길은 온통 아기손같은 연두빛 단풍나무 세상이다.
마악 세상에 손을 내민 연두빛 단풍나무 이파리 위로 5월의 햇볕이 오소소 오소소 부서지고, 연두빛은 더욱 싱그럽고 투명하다.
' 올 가을에 내가 너희들 만나러 올게. 나 열심히 속세에서 내 삶 살아내고 다시 올게. 너희들도 붉게 붉게 물들어 나를 기다려 주렴.'
연두빛 단풍 이파리 위로 부서지는 오월의 햇빛이 너무 아름다워 나는 차마 걸음을 떼지 못하다.
연두빛 이파리 위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오월의 햇볕이 너무 눈이 부셔서 나는 조금 울었는지 모른다.
유평 삼거리에서 머핀님과 미자씨와 다시 합류하여 우리는 씩씩하게 대원사를 거쳐 차부로 이어지는 그 꿈길을 걸어 속세로 귀환한다.
아름다운 5월, 그대는 행복한가?
나는 그 날 그 길에서 감히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어서, 이 모든 것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그래 살아 있어서 다행이고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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