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대 종주 둘째날이다.
오늘은 연하천 대피소에서 시작 세석 대피소를 거쳐 약 13km를 걸어 장터목 대피소로 이동한다.
7시 50분 연하천을 출발하여 10시에 벽소령 지나, 세석에서 점심 먹고 2시에 출발 , 3시 15분 장터목에 도착하여 하루를 마무리한다.
첫날(5월 1일) : 화엄사 - 연하천(17.5km) : 노고단에서 점심
둘째날(5월 2일) : 연하천 - 장터목(12.6km) : 세석에서 점심
세째날(5월 3일) : 장터목 - 대원사(15.4km) : 치밭목에서 아침
연하천의 아침은 푸지게 쏟아지는 봄빛으로 시작한다.
18km의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씩씩하게 일어나 부지런하게 하루를 준비한다.
손이 빠른 머핀님의 손놀림 덕분에 늘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부지런하고 깔끔한 이미자님 덕분에 '연하천' 대피소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물이 많은 이 곳에서 쌀도 미리 씻고 물로 대강 설거지까지 할 수 있었다.
손도 느리고 부지런하지도 않고 깔끔하지도 않으며 임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도 없는 나는 미안하게 젓가락과 컵만 들고 다닌다.
포근한 봄빛이 엄청 푸지게 쏟아지는 연하천을 떠나 벽소령으로 향한다.
작년 5월 굳이 떠나지 말고 연하천에 머무르라는 충고를 듣지 않고 빛의 속도로 6시에 연하천을 출발하여 벽소령으로 걸었던 탓에 제대로 연하천과 벽소령 구간의 아름다움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재작년에는 종일 내리는 빗속에서 탐방을 했으니 아름다움은 그만 두고 추위 속에 오슬오슬 떨어야만 했다.
머핀님이 제일 좋아한다는 이 구간은 지리산 탐방의 정수를 제대로 보여 준다.
바위를 오르고 내리며 만나는 지리산의 수많은 연봉들이 끝없이 발 아래 펼쳐지고, 첩첩산중답게 겹겹한 산봉우리들이 오른쪽과 왼쪽에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시도 때도 없이 산 가운데에서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 하늘로 이어지고, 또 다른 구름이 뒤를 이어 또 새롭게 피어난다.
끊어질듯 길은 계속 이어지고,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면 새로운 투명한 하늘이 기다리고,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면 새로운 연봉이 끝없이 펼쳐지고, 고개 들어 위를 바라보면 바위 틈을 뚫고 자란 소나무가 하늘을 향하여 올곧게 푸르름을 자랑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는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떠올리게 하는 바위 틈을 여러 번 지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낡은 잡지雜誌)의 표지(表紙)처럼 통속(通俗)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木馬)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세석에서 점심을 먹고 머핀님과 미자씨의 양해로 장터목까지 마음껏 달려 보았다.
한 시간 정도 넋을 잃고 지리산의 정기를 느끼며 천왕봉 신령님께 내 여리고 가난한 마음을 모두 내보이며 걸었다.
세석 평전의 철쭉은 아직 개화의 징조는 없지만 세석 평전의 바람은 온화하고 부드럽게 내 마음을 다독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몸과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 보라고 나를 달랜다.
결국 실패하고 패배할지라도 삶은 살아볼 만하다며, 모든 삶은 실패가 예정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 저자 거리로 내려가 다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이 삶을 견뎌내라며 장터목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 나를 토닥토닥 위로한다.
세석에 부는 바람 속을 걸으며 내가 조금 울었는가?
세석에서 지리산 연봉을 눈물어린 눈으로 바라 보았는가?
장터목 대피소가 내 시야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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