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걸었던 길을 다시 걷는다.
원래 계획은 14문 종주라며 호기롭게 잘난 척을 하였는데, 연 이틀 계속되는 강행군에 내 다리도 조금 무겁고, 주선씨가 9시 30분에 나간다는데 일찍 집을 나서기가 마음에 걸려 계획을 수정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5월 대망의 집 탈출 프로젝트를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4월은 샤방샤방 정숙하게 집을 가능한 지키는 것이 여러 가지로 신상에 이롭다는 판단이다.
또 서울에서 제대로 꽃놀이를 해보지 못했다는 아타님의 투정 아닌 투정도 떠오르고, 아타님이 찍은 서울과 봄꽃이 만들어내는 풍광도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결국 아타님과 9시 강변역에서 만나 용답역에서 헤어질 때까지 점심 시간 빼고 7시간 20분 동안 25km를 걸었다.(4월 13일 토요일)
아타님은 송정 둑방길 개나리도 볼 수 있다며 호언을 하셨지만 거기에서 군자역까지 걸어가는 것도 만만치 않고 주선시 오기 전에 집에 들어 가려는 마음 때문에 용답에서 개나리 축제를 마무리했다.
뚝섬의 벚꽃은 어제와는 달리 완전 흐드러져 팝콘으로 만개하고, 노오란 개나리의 뒤를 이어 어머니 마른 손같은 하이얀 조팝꽃이 부드러운 봄날의 온유한 공기 속에 그 여린 빛과 향기를 퐁퐁 뿌려주고, 하얀 제비꽃과 보랏빛 제비꽃은 애기똥풀과 푸른 별꽃과 어우러져 봄날을 연출한다.
서울 숲 꽃사슴은 어제보다 훨씬 활발하게 봄빛을 즐기고, 어린 꽃사슴 한 마리는 고라니인 양 뛰어 다니고, 사육장 연못의 버드나무의 연두빛 가지는 능수가 무엇인지를 증명하며 추욱 추욱 늘어져 연못까지 닿을 듯하다.
서울 숲 생태 통로에서 바라보는 응봉산은 올 봄 개나리의 진수를 보여주겠다고 작심을 한 듯 노오란 물감을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향해 내뿜는다.
노오란 개나리, 하이얀 조팝꽃, 연분홍빛 벚꽃이 에메랄드 하늘을 머리에 이고 한강을 향해 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독서당공원은 어제처럼 고즈넉한 가운데 머핀님과 이미자님이 3단 케잌이라 - 노오란 개나리와 초록빛 소나무, 삼나무나 메타세콰이어 아니면 낙우송인지 모를 겨울 나무 가지가 만들어내는 3단의 높이 - 이름 지은 풍광이 흐드러진 목련과 어울려 아름답다.
독서당 공원 끝에서 맥주에 새우깡으로 힘을 보충하고 와인빛 전구를 반짝반짝 달고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가득한 금오산으로 향한다.
금오산은 리허설까지 모두 끝내고 본 공연을 기다리는 공연장처럼 긴장된 상태로 개화를 향해 달려갈 준비가 모두 되어 있는 벚나무가 가득 가득하다.
매봉산에서 한강을 향하여 심호흡하고 버티고개 생태 통로 지나 서울 성곽을 향한다.
아타님은 출사 준비하시라는 내 말에 충실하게 커다란 배불뚝이 카메라를 가지고 오셨다, 메모리 카드만 빼고.
그럼에도 스마트폰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풍광 담아내기에 열중하신다.
찍고, 찍고, 또 찍고.
아타님이 찍은 사진을 보며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한다'는 옛말이 그른 말이 아님을 실감하며, 더 이상 늘지 않는 내 사진 솜씨는 연장 때문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과 예술적 자질의 부족임을 뼈저리게 고백한다.
서울 성곽의 목련과 벚꽃은 이제 흐드러지다 못해 요염하고 방자하며 세기말 사조같은 처연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어제처럼 '닭 한 마리' 먹자는데 아타님이 광장 뷔폐를 가자고 하시기에 조금 헤매다가 다시 버들다리까지 돌아와 어제 그 집으로 갔다.
오간수교에서 버들다리 지나 나래교 거쳐 마천교 내지는 새벽다리까지 가야 하는데, 버들다리에서 시장통으로 나가 광장뷔폐를 찾았으니......
어제 가고 오늘 갔으니 세련된 단골답게 맛있게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시 청계천으로 나와 충랑천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제는 오늘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홍매화와 백매화에 취할 시간이다.
아타님 스마트폰마저 베터리가 다 나가서 내 디카를 빌려 드리고, 청계천 매화 사진은 아타님깨 모두 맡기고 나는 매화 빛깔과 매화 내음에 만끽 봄을 즐긴다.
어제보다 활짝 더 핀 매화는 어제보다 더 부드러운 봄날 주말에 취해 더 정갈하고 고귀하며 우아하다.
하롱하롱 매화 향기에 젖어 용답에서 봄날 아름다운 풍광과 아쉬운 이별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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