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9일 (금요일)부터 11월 11일(일요일)까지 제주에 다녀 오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도저히 따라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나름 선방하고 돌아온 여행이었다.
목요일 오후 샛강을 따라 머핀님과 함께 걷다가 노량진에서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하는데 머리 한가운데는 커다란 드릴이 빙빙 돌고, 마음은 찢어질 듯이 아프고......
디카의 사진을 그냥 그대로 컴에 넣어 두고 다시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가족 앨범 폴더를 들추다가 아름다운 초겨울의 제주를 재발견 했다고나 할까?
아니면 그 날의 아픔과 고통이 모두 다 지나갔기 때문일까?
시간 앞에는 그 어떤 것도 그냥 속수무책, 완전한 무장해제임을.
금요일과 일요일에 선배 언니와 올레길 18코스와 19코스 그리고 20코스 일부를 걷고, 토요일에는 소이수회 여러분들과 차로 제주 시내 곳곳을 드라이브하며 겨울비 내리는 제주를 느꼈다.
원래 계획은 영실에서 돈내코로 등반을 할 계획이었는데, 겨울을 부르는 비와 제주의 그 엄청난 바람 때문에 등반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차로 빗속에서 영실, 성판악, 돈내코, 관음사까지 찍었으니 확실하게 눈과 마음으로 한라산를 오른 것은 분명하다.
18코스 산지천 마당에서 만세 동산까지 18.5km와 19코스 조천 만세동산에서 관곶까지 2.2km를 금요일에 걸었다.
제주 답사 1번지라고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일갈한 대로 조촌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사라봉, 삼양 검은 모래 해변, 원당봉, 연북정, 만세 동산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으며 많은 꽃과 열매를 만났다.
보랏빛 열매, 와인빛 열매, 겨자빛 열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귤밭.
계절을 잊고 온갖 색의 향연을 펼치는 야생화, 연두와 초록으로 봄을 부르는 마늘과 양파는 꽃보다 더 아름다웠다.
마음은 어수선하고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서울에 두고 몸은 제주에 있는데, 공기는 온유하고 바람은 투명하고.....
제주는 거기 그렇게 있었다, 내 마음을 투명하게 응시하며.
그리고 세 달이 지난 지금 그 때 그 마음을 내가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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