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한 운동으로 인한 근육 파열로 결론이 난 주선씨는 밤새 끙끙 앓고, 날씨는 활짝 갠 시월의 마지막 일요일이다.
계속 걷거나 계속 움직이면 아프지 않는 허리가 한 동작에서 다른 동작으로 바꾸려고 시도하면 온 허리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관성의 법칙에 충실한 허리 덕분에 힘들지만 모든 일정은 그대로 수박 겉핥기 식으로라도 진행한다.
'사돈집'에서 곰치국으로 해장을 하고 구룡령 정상 백두대간 탐방 지원센터에서 아래 갈천리로 내려 오기로 했다.
그리고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을 따라 걷기로 원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구룡령 옛길 걷기만 해 낼 수 있었다.
마이 코치는 1시간 45분에 5km를 걸었다고 이야기해 준다.(10월 28일 일요일)
56번 도로 갈천 체험학교에 차를 세우고 정상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모색했지만, 방법이 없어 일단 모두 정상으로 차로 이동 했다가, 선배 언니네 부부를 내려 주고 우리는 아래로 내려 왔다.
언니네는 정상에서 아래로, 우리는 갈천리에서 위로 이동하여 만나는 지점에서 아래로 내려 오기로 계획을 잡았다.
갈천리에 주차하고 걸으려는데 지나가는 택시와 만원에 정상까지 이야기가 잘 되어 또 구룡령 정상으로 차로 이동해서, 언니네 뒤를 따라 정상에서 갈천리로 걸어 내려 왔다. 마지막으로 서울로 가기 위하여 또 차로 구룡령 정상을 향해 올랐다.
결국 구룡령 도로를 차로 네 번 걸으며 눈으로 보고, 네 발로 한 번 걸으며 발로 보았다.
노오란 낙엽송과 푸르른 전나무, 그리고 하이얀 자작나무에 매달린 노오란 이파리가 하늘거리는 풍광을 구룡령을 오르고 내리며 구룡령을 떠나며 지치도록 보고 보았다.
계획 수종으로 심은 자작나무가 러시아의 자작나무 숲처럼 원대하지 않아도, 원대리나 수산리의 그것처럼 거대한 숲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연약하지만 하이얀 자작나무 줄기며 가지에 매달린 반짝이는 노오란 이파리는 그 자체가 감동이고 경이로움이었다.
노오란 이파리에 쏟아지는 시월의 아쉬운 가을빛이 반짝반짝 하늘하늘 오소소 부서진다.
그래, 어쩌면 삶은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그래, 어쩌면 삶에는 아직 내가 만나지 못한 아름다운 비의(秘意)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고 감히 생각해 본다.
구룡령 백두대간 탐방센터에서 명개리 쪽으로 56번 국도로 조금 이동하여 오른쪽 계단으로 오르면 구룡령 옛길로 접어든다.(조침령 쪽으로)
1013m의 높이 때문에 구룡령 정상은 눈만 내리지 않았을 뿐 완전 겨울산이다.
모든 것을 떨군 정갈한 11월의 나무들이 자신이 떨군 나뭇잎과 마주 하며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 낙엽을 밟고 밟으며 숲길을 걸어간다.
이파리를 떨군 나무 사이로 끝없이 봉우리들이 이어지고, 첩첩산중을 떠올리며 오르락 내리락을 몇 번 하니 구룡령 정상, 양양 방향으로 하산길을 택한다.
무덤에 관을 넣고 다질 때 쓰는 횟돌이 있었다는 횟돌반쟁이, 궁궐을 지을 때 쓰는 금강송이 많이 있었다는 솔반쟁이, 더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원님을 업고 구룡령을 뛰어 올랐다가 장렬하게 죽은 총각의 묘가 있었다는 묘반쟁이를 거쳐 갈천리에 닿는다.
아래로 조금씩 내려 올 때마다 풍광은 가을로 변하고, 황량하지만 정갈한 겨울산은 노오란 이파리와 와인빛 이파리를 매달고 있는 가을산으로 변한다.
이렇게 겨울에서 가을로 우리는 내려 왔다.
주선씨가 좋아하는 흙길 내리막길을 끝으로 계곡 하나 건너면 아쉽게도 구룡령 옛길은 끝난다.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오대산 월정사 옛길에서 상원사 거쳐 명개리까지, 또 명개리에서 구룡령 입구까지, 그리고 구룡령 옛길에서 갈천리까지 이어지는 이 아름다운 길을 걷고 싶다. 월정사에서 명개리까지 24km, 명개리에서 구룡령 입구까지 포장 도로 4km, 구룡령 옛길 4km, 약 32km 아름다운 꿈길을 언젠가 걸으리라.
걸어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은 아직 삶의 이유가 있다는 것의 다른 말이 아닐까?
돌아오는 길 하이얀 자작나무에 매달린 시리도록 노오란 이파리에 온 영혼으로 빠져 본다.
아름다운 계절, 그래서 눈물겹도록 아쉬운 계절이 이렇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