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 서울을 출발 델 피노로 이름이 바뀐 속초 대명 콘도에 도착, 하루를 보냈다.
지난 추석 이후에 PGA 프로골퍼가 되어 버린 주선씨 허리가 장거리 운전으로 말썽을 부리며 허리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을 호소하고, 오후부터 내린다는 비는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고, 홍합국인 섶국 한 그릇으로 해장하고 바닷가를 거닐자고 주선씨는 환자의 권리로 어리광 어린 투정을 한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만이라도 걸어 보자며 밀당을 시도하여 오대산으로 출발, 속초에서 오대산까지는 조마조마하게 거리가 멀기도 멀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따라 걷기 시작, 결국 상원사까지 오대산 옛길을 걸었다.
마이 코치에 따르면 월정사 일주문에서 상원사까지 3시간 30분 동안 11km를 걸었단다.(10월 27밀 토요일)
결국 주선씨는 7km 정도 걷고 월정사 입구의 차를 가져 오기 위하여 지나가는 관광 버스를 세우는 히치 하이크를 시도, 미니 관광 버스에 타신 술이 거나하게 취하신 노인들께 노래 부르기와 말춤 추기 등의 재롱을 차비로 요구 받았지만 굳세게 버티었다는 일화 내지는 후일담.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아들 승민이가 어렸을 때, 온 가족이 함께 처음 오고 난 뒤에 처음 온다는 주선씨와 보슬보슬 내리는 빗속을 유유자적 여유만만 행운유수의 기분으로 걷는다.
가끔씩 만나는 선홍빛 붉은 단풍이 비 내리는 주말의 우울함을 밝음으로 바꾸어 버린다.
월정사는 빗속임에도 오대산 가을을 즐기기 위한 인파로 인산인해를 연출한다.
월정사를 가볍게 둘러 보고 우리는 템플 스테이를 위한 대규모 숙박 시설을 지나 포장된 도로를 따라 월정사 옛길을 찾아 상원사로 향한다.
가끔 지나는 차들이 있었지만 비 덕분에 조금은 고즈넉해진 빨갛고 노오란 잎으로 옷을 갈아 입은 산을 오른족에 두고, 왼쪽으로 계곡을 바라보며 남대인 지장암과 동대인 관음암 지나 부도밭을 거쳐 월정사 제재소가 있는 반야교를 건너면 오대산 옛길이 시작된다.
도로와 나란히 가는 옛길을 복원한 오대산 옛길은 구비구비 흙길과 계곡길을 잘 버무려 오르막과 내리막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단풍잎은 끝물이지만 노오란 빛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웅변으로 보여 주는 낙엽송 사잇길을 걸어가는 기쁨과 행복감은 뭐라 표현할 수 없었다.
떡깔나무, 생강나무, 낙엽송이 노오란, 샛노란, 연두빛 노오란, 갈색을 띤 노오란 이파리를 매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걷다가 뒤 돌아보면 언제 저 길을 걸었을까 싶은 풍광이 내 등 뒤에 펼쳐져 있고, 아쉬움을 접고 몸을 돌리면 내 앞에 또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주 찬연했을 단풍은 떨어져 발밑에 딩굴고, 물안개 자욱한 계곡에서 바라보는 노오란 낙엽송은 아득하기만 하다.
아름답게 복원한 이 길을 따라 상원사 거쳐 명개리까지, 그리고 이어서 구룡령 옛길까지 끝없이 걷고 싶다.
늘 미진한 듯, 늘 아쉬운 듯, 어쩌면 우리네 삶이 그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