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일기

14문 종주

꿈꾸는 식물 2012. 11. 6. 00:23

  혼자서 가을 보내기 14문 종주에 나선다.

지난 여름 혼자 12문 종주를 할 때는 원효봉에서 의상봉으로 시도, 중성문과 수문을 찾지 못하여 12문 종주에 그쳤고, 머핀님과 두 번째로 시도할 때는 의상봉에서 원효봉으로 돌았는데 중성문에서 잘난 척하여 국녕사로 나가지 않고 직접 능선을 공략 가사당암문을 놓쳐 13문 종주에 그쳤다.

드디어 모든 실수를 만회하여 의상봉에서 원효봉으로 14문 종주를 완성한 것은 세 번째 공략에서였다.

해가 점점 짧아져 올해의 마지막 14문 종주가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6시간 15분16.5km를 걸었다.(11월 3일 토요일)

  일찍 일어났는데 집을 나서기가 싫어 신문 읽고 책도 읽고, 보현이 과일까지 가져다 놓고, 구파발 1번 출구에 도착하니 9시 30분이 조금 지나 있었다.

길게 늘어선 버스 대기줄이 온 서울 산꾼들이 북한산에 몰린듯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잽싸게 택시에 합승, 거금 2000원을 투자해서 북한산 탐방 지원센터에 도착하니 10시, 죽도록 걸어 4시 15분에 하산 완료 하였다.

수문에서 대서문, 중성문까지 어제 산산님과 걸었던 길을 혼자 걷는다.

고즈넉한 중성문에도 오늘은 대남문으로 오르는 사람들도 장사진 - 산산님 말씀대로 참 상투적이고 진부한 표현이다 - 을 이루며 몰려 있다.    

올라가는 사람들을 헤치며 다시 법용사로 나와 국녕사를 향해 오른다.

국녕사로 향하는 길은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11월의 나무들이 푸른 하늘을 향하여 그 정갈한 소망을 드러내고, 갈색 낙엽들이 벨벳처럼 깔려 늦가을의 정취를 자아낸다.

국녕사에도 사람은 여전히 많다.

가사당암문에서 의상봉을 넘어온 산꾼들과 기차 놀이하는 아이들처럼 줄을 지어 부왕동암문과 청수동암문을 지난다.

의상봉 - 용출봉 - 용혈봉 - 증취봉 - 나월봉 - 나한봉 - 715봉 - 문수봉으로 의상 능선은 이어지고, 보이는 골짜기마다 초록이 지쳐 붉은 빛으로 노란 빛으로 와인 빛으로 온갖 색채의 향연을 보여준다.

대남문에서 잠깐 쉬려 했는데 쉴 자리도 마땅한 곳이 없어 대성문을 지나 보국문 거쳐 대동문까지 걸었다.

대동문에서 커피 한 잔에 단감 몇 쪽을 먹으며 호흡을 조절한다.

온갖 단체에서 단합대회로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 곳곳에서 교통 체증이 벌어진다.

의상 능선에서 내 앞에 가는 형제들과 내가 모두 오렌지빛 등산복을 입고 한참을 같이 걸어 오늘 북한산 드레스 코드가 오렌지인가 혼자 생각하고 웃었는데, 여기저기 오렌지빛이 깔려 있다.

대동문에서 용암문 지나 위문으로 오르는 구간은 도저히 등산로로 갈 수 없어서 산산님께 배운 대로 살짝 위로 올라서 바위로 걸었다.

누구 말대로 공주와 왕비가 북한산에 대거 왕림하셔서 나래비를 섰고, 슬라브 계통의 말을 하는 외국인들까지 떼를 지어 왔으니, 피막골로 돌아갈 수밖에 방법이 없다.

고지식하게 어제 산산님과 거쳤던 위문까지 찍고, 이제 원효봉을 향한 하산길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너덜길을 오르는 사람과 내려 가는 사람이 줄지어 먼지를 일으키며 지루하게 지리멸렬하게 걸어 간다.

사진도 찍고 여유를 부리며 가려고 노력했지만 대동사 갈림길이 그렇게 멀게 느껴질 줄 몰랐다.

염초봉으로 향한 오르막을 걸어 단아한 북문을 만나고, 마지막 원효봉을 향하여 오른다.

원효봉에서 바라보는 염초봉과 백운대는 가슴 뛰게 만드는 환희와 감탄이다.

염초봉, 숨은벽, 노적봉, 인수봉, 만경대, 그리고 설교벽.

내가 리찌를 하고 싶은 이유이다.

원효봉에서 시구문까지 한 걸음에 달려 늘 그런 것처럼 효자비가 아닌 덕암사로 방향을 잡아 다시 수문을 통과, 완전 회귀했다.

  주선씨를 기다리며 편의점에서 맥주 한 켄 마신다.

둘레길 걸어서 거꾸로 가겠다고 했다가 주선씨에게 한 소리 듣고 원효봉만 지치도록 바라보다가 주선씨 차에 실려 집으로 돌아온다.

아름다운 11월의 첫 번째 토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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