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일기

걸어서 청계천까지

꿈꾸는 식물 2012. 10. 10. 12:04

  정말 오랜만에 혼자 길을 나선다.

언제부터 시작한 버르장머리인지 혼자 길 나서기가 싫어 오늘도 머뭇거리고 망설이며 온갖 이유를 다 들이대다가 마침내 드디어 혼자 길을 나선다.

이제 혼자서는 산에 갈 자신이 없고, 북한산이 아닌 다른 산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 집에서 청계천 향해 가다가 동대문 근처에서 남산길로 접어 들어 도심 등산길을 돌아 다시 회귀하리라 생각하고 길을 나선다.

결국 올림픽대교에서 시작, 서울 숲 지나 중랑천과 한강 합수 지점 찍고, 살곶이공원 거쳐 청계천으로 접어 들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비로 인하여 동대문에서 청계천을 버렸지만 남산으로 가지 못하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지하철로 회귀했다.

마이코치에 따르면 3시간 40분 동안 18km를 걸었다.(9월 28일 금요일)

  떠나는 여름과 다가오는 가을이 공존하는 한강변을 넋을 던져 두고 약간은 유체이탈 상태로 걸었다.

아직도 푸르름을 자랑하는 버드나무와 그 버드나무를 타고 오르는 온갖 담쟁이과의 넝쿨, 덩쿨들, 점점 갈색을 더해 가는 슈크렁과 보랏빛에 흰빛을 더해 가는 강변의 갈대들, 잉크빛과 붉은빛의 온갖 조합을 자랑하며 흐드러지게 만발해 있는 나팔꽃들, 진경이가 좋아하는 이름도 잘 모르는 주황빛 작은 깔대기 모양의 주황 예쁜이.

온갖 종류의 갈대와 억새와 수수와 옥수수, 아직도 짱짱하게 피어 있는 의연하고 담대한 하와이안 무궁화, 빨갛게 익어 가는 산수유 열매, 누가 뭐라 해도 가을 전령사 종결자인 분홍 하양 와인빛 코스모스, 빨강과 노랑 물감을 내뿜고 있는 강렬함으로 우리 앞에 그렇게 다가오는 칸나, 오 칸나.

추석빔으로 갈아 입은 남매상, 서로를 향하여 끝없이 손을 내밀며 다가가는 담쟁이 넝쿨, 푸른 빛 담쟁이 위로 살짝 놓인 붉은빛 담쟁이의 가을 내음.

  이 아름다운 계절을 혼자만 만끽한다는 자책감에도 불구하고 계절은 그렇게 처연하도록 아름답기만 하다.

일상의 수레바퀴에서 잠깐 내려도 그의 부재와는 전혀 무관하게 일상은 흘러간다.

삶의 수레바퀴에서 영원히 내려도 그의 부재와는 전혀 무관하게 삶은 흘러간다.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 그 찰라가 영원임을 아프도록 깨닫는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이 찰라임을, 마음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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