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소풍길을 걷는다.
천상병 시인의 고향인 의정부 둘레길을 그의 시 '귀천'의 한 구절에서 따서 소풍길이라 이름 지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공대장을 따라 기행에 나선다.
소풍길이 모두 완성된 것은 아니어서, 오늘 우리는 불로장생길과 산림욕길 3구간과 4구간을 걷기로 했다.
1호선 녹양역에서 9시에 만나 4시까지 7시간 동안 18km를 걷고, 의정부역까지 버스로 이동, 하루를 마감했다.(8월 18일 토요일)
옛날 녹양평이 군마를 기른 곳이었기 때문에 녹양역 앞에는 말 두 마리가 한가로이 뛰놀고 있다.
중랑천을 따라 의정부까지 걸어 왔다가 그만 돌아가 버렸는데, 그 하천길이 계속 여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천길을 따라 걷다가 우리는 산으로 방향을 잡아 현충탑으로 향한다.
병자호란 뒤 청에서 조선의 공주에게 청혼을 했는데, 그 공주를 대신해서 종친의 딸이 급히 공주가 되어 청으로 가는 길에 압록강에 몸을 던진 의순공주의 족두리묘, 선조의 일곱째 왕자로 인조반정 때 겨우 살아 났으나 이괄의 난 때 진도로 유배, 자살을 강요 당했던 인성군의 묘를 만날 수 있었다.
산길을 오르며 내리며, 산이 조금 환하게 트인 곳에는 으레 잘 가꿔진 무덤을 만나고, 무덤 사이사이에 조금은 생경하고 낯선 야외 납골당이 있고, 수목장을 하는 곳까지 있었다.
지난 주 다산길처럼 길은 너무 걷기 좋은 아름다운 숲길인데 사람들은 거의 만날 수가 없었다.
나지막한 천보산과 용암산 부용산으로 산길은 계속 이어지고 내루골포도밭과 무지랭이계곡을 스친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하늘은 급기야 비를 한바탕 뿌려대고, 큰언니와 공샘과 나는 씩씩하고 의연하게 걷고 또 걸었다.
빗 속에서 걸어도 미끄러지지 않을 정도로 물이 적당히 빠지고, 발에 붙지 않을 정도로 찰진 산길이어서 걷기에 너무 좋았다.
토실토실 익어가는 초록빛 밤송이, 붉게 익어가는 초록빛 고추밭의 길쭉한 고추, 보랏빛으로 수줍게 숨어 있는 가지, 수확 시기를 놓친 늙은 오이 노각, 주렁주렁 수고롭게 열려 있는 토마토. 하연 종이 봉지 속에서 보랏빛으로 익어갈 주저리주저리 열린 포도 봉투.
제대로 벼꽃을 처음 보는 나에게 벼의 수정에 대하여, 쭉정이에 대하여 설명해 주시고, 앞으로 보름이 벼농사에 얼마나 중요한 고비인지 앞 다투며 이야기해 주시는 두 분들과 새로운 대화를 나눴다.
공샘의 아내와 따님들에 대한 사랑, 공샘의 살림꾼으로서 알뜰함, 익히 알고 있던 큰언니의 식솔에 대한 절절한 모정, 해방둥이로서 살아 오신 큰언니의 지난한 그러나 지금은 편안한 구비구비 삶의 여정이 마음에 와 닿는다.
어떻게 살아야 이 세상 소풍 끝내고 돌아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곧게 자란 나무들 사이로 그림처럼 이어지는 숲길, 날씨가 좋았다면 애써 만들어 놓은 나무 해먹에서 한바창 쉬어 가고 싶다는 아쉬움에 서성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