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일기

서울 성곽 걷기

꿈꾸는 식물 2012. 7. 20. 19:25

  지난 주 금요일 이 시간 나는 관동대로 기행에 나설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고 예원에 다니는 학생 마지막 직보를 하고 있었다.

타이슨님의 족발 파티에 가고 싶었지만, 시간이 빠뜩하여 대강 '어려우려니' 포기하고 수업 마치고 도망 가려고 내 기행 가방에 주선씨 골프 가방 다 싸놓고, 냉장고에 이틀 먹을 과일과 끓인 물 채워 놓고, 쓰레기는 모두 처리 했다.

낮에 더 좋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물리 치료를 받겠다는 아들이 마비에 목 디스크, 목 종양, 바이러스 감염, 피검사, MRI 촬영에 급기야 아산병원 응급실까지......

성난 바다에 폭풍처럼 몰아치는, 마른 들녘에 들불처럼 번지는 불안과 걱정과 근심과 애탐과 안쓰러움과 연민과 속상함.

결국 기행은 접고, 아들은 우여곡절 끝에 리트 시험이 끝난 후 월요일에 정밀검사를 받기로 결정하고, 아들 인턴은 일 주일 후로 미루기로 결정 하였다.

그 사이 이해하나 용납할 수 없는 일로 주선씨와 황당하고 또 황당한 언찮은 일이 있어 다시는 이수회 부부 동반 모임에 나가지 않기로 다짐 하였다.

지독한 감기에 오랜만에 걸려 콧불과 발열이 목이 잠기는 불상사로 이어지고, 이제 폭풍 기침이라는 마지막 무대를 남겨두고 있다.

  토요일 아침 주선씨는 계획대로 운동 나가고, 나를 기행에서 주저 앉힌 아들은 천연덕스럽게 학교 도서관에 나가고, 혼자 감행하기에는 비가 올 것 같은 날씨 때문에 북한산 14문 종주는 다음으로 미루고, 혼자 서울 성곽 걷기에 나선다.

10시 30분 회현역에서 숭례문을 향하여 출발, 서울 성곽 한 바퀴 돌고 , 다시 숭례문 찍고 4시 30분 시청역까지, 6시간 동안 23km를 걸었다.(7월 14일 토요일)

회현역에서 남산으로 가는 것보다 개인적으로 시청역에서 걸어서 숭례문 찍고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을 듯, 소득이라면 숭례문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성곽을 밖에서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비 그친 후의 남산길은 촉촉히 젖어 있고, 공기는 부드럽고 싱그러운 향기를 머금고, 도심은 비에 깨끗하게 씻겨 처음 도시가 열리는 산뜻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었다.

남산타워 앞에서 벌어지는 무술 시범은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봉수대 교대식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잘 생긴 우리 장정들이 봉수대 교대식 시범을 보이고, 많은 외국인들이 그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가 해외 여행에 가서 근위병들과 그러하듯이.

성곽은 초록빛 담쟁이와 연두빛 이끼로 옷을 갈아 입고, 녹색의 절정을 향하여 달려가는 계절 한가운데 그렇게 놓여 있었다.

북한산의 연봉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오고, 먹장구름은 모였다가 흩어졌다를 반복하고, 오늘 피어난 무궁화의 보랏빛과 흰빛이 찬란하도록 싱그럽다.

말바위쉼터 통과 시간을 두 시로 착각하여 늘 먹고 싶었던 잔치국수도 접고 허둥지둥 낙산공원에 들어서니 세시란다.

나선 걸음에 그냥 걸어 1시 20분에 말바위쉼터를 지난다.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북한산의 다정한 봉우리, 독수리봉과 향로봉과 비봉 그리고 살짝 숨어 있는 사모바위와 문수봉.

숙정문과 창의문(자하문) 지나 윤동주시인의 언덕을 거쳐 드디어 인왕산.

인왕산에서 바라보는 일직선의 광화문과 경복궁, 남산과 남산 타워, 낙산과 북악의 줄기, 그리고 안산.

인왕산은 보수 공사를 완전하게 끝내고 서울 성곽의 모습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저 하얀 성곽에도 담쟁이가 오르고 이끼가 끼고, 무당벌레가 지나가고, 고추 잠자리가 앉고, 천둥과 번개와 함께 세월이 흐르겠지.

인왕산에서 성곽을 따라 계속 아래로 내려오며, 성곽은 이제 터로만 남아 있는 서대문(돈의문)을 향해 도도하게 흐른다.

서대문 형무소가 있었던, 독립문이 있는 오른쪽을 바라보며 성곽을 따라 걷는다.

잠자리 채를 들고 잠자리가 안 잡힌다고 징징거리며 마구 휘두르던 어린 소녀가 우연히 잠자리를 잡고 좋아서 날뛴다.

옆에 있던 젊은 아버지까지 신기해하면서 마냥 즐겁다.

지나가는 나도 그 부녀의 기쁨에 동참하며 한바탕 신기해하며 웃어준다.

나에게도 저런 기쁨이 오기를, 저런 순수한 기쁨에 크게 소리내어 웃어본 적이 언제일까 생각하며 혼자 아득해진다.

홍남파기념관에서 잠간 알바를 하고, 강북 삼성병원 근처의 서대문 터를 지나 정동으로 접어든다.

수많은 근대 건물을 지닌 정동길을 걸어 덕수궁 돌담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려 배재학당으로 걷는다.

덕수궁 돌담길은 앞에서 들어오는 것과 뒤에서 들어오는 것이 너무 달라서 늘 새 길을 걷는 듯 애틋하고 절절하다.

그리고 신호등을 건너 중앙일보 쪽으로 오른쪽 방향을 완전하게 잡아야 했는데, 살짝 못 미쳐 골목으로 들어가 성곽 뒷쪽으로 숭례문을 만났다.

다시 방향 돌려 복원한 곳인 중앙일보로 우회하여 신호를 건너 시청앞에서 걷기를 끝냈다.    

  도심 등산로 버티고개에 버티고개 생태 통로가 만들어져 그 통로가 남산 바로 옆 반얀 트리 서울 앤 스파로 이어진다.  

인왕산 성곽이 완전히 복원되어 그 새로운 성곽에도 세월의 연룬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인왕산에서 옆으로 광화문과 경복궁의 모습을 북악보다 더 잘 찍을 수 있다.

  넋을 잃고 걷다보니 마음이 말개지고 생각이 단순해진다.

잘 되리라 믿고 또 믿는다.

'난 행운 엄마'라고 감히 단언하는 부러운 김명숙씨는 못 되지만, 그래도 지금껏 고맙게 잘 해온 내 아들 승민.

잘 되리라 믿고 또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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