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라벤과 덴빈으로 남한강 걷기 이후에 걷지를 못 했다.
어제는 삼목회 북한산에 가고 싶어서 얼마나 날씨 검색을 하고 또 했는지 모른다.
모처럼 화창하게 갠 금요일, 이렇게 시계가 좋은 날은 북한산에 가야 하는데 오르는 길은 혼자 걸어도 괜찮은데 하산길이 너무 지루하고 내일 기행을 떠나기에 동네 삼산을 걷기로 한다.
원래는 잽싸게 서울 성곽을 돌 계획이었는데, 동생의 부탁으로 광남중학교를 다녀오니 벌써 10시가 다 되어 동네 삼산 돌기로 계획을 바꾼다.
결국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을 거쳐 형제 약수터 쪽 구리 둘레길로 하산했다.
마이코치에 따르면 4시간 동안 16km를 걸었단다.(8월 31일 금요일)
광장 중학교에는 손연재 선수를 위한 플래카드가, 광장 초등학교에는 홍명보 감독을 위한 플래카드가 지난 여름 그 뜨거웠던 올림픽의 기억처럼 걸려 있다.
지난 여름 그 찜통 더위에 지친 우리에게 시원한 강바람 산바람같은 위로를 주었던 런던을 떠올린다.
벌써 '지난 여름'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가을은 조금씩 조금씩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태풍이 몰고온 폭우로 멀리 보이는 한강은 황토빛의 도도한 물빛으로 흘러가고, 태풍이 몰고온 바람으로 멀리 보이는 관악산, 남산, 그리고 북한산의 백운대 인수봉까지 봉우리 하나하나가 그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아차산에서 바라보는 서울 시내는 놀이터에서 놀다가 땀과 흙먼지로 범벅된 얼굴을 막 씻고 나온 개구쟁이 어린 아이처럼 싱그럽고 해맑기까지 하다.
광진교, 암사대교, 강동대교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보이는 운길산, 예봉산, 예빈산, 하남의 검단산까지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망우산 하산길, 계곡마다 물소리가 우당탕 요란하고, 구리 둘레길은 떨어진 나뭇가지와 나뭇잎, 밤송이와 도토리로 길의 흔적을 찾기조차 어렵다.
망우산 공원 묘지의 망인의 유택에는 여름을 견뎌낸 잔디 위에 온갖 풀이 추억처럼 무성하다.
다음 주부터는 추석맞이 이발을 위해 벌초가 한바탕 벌어지겠지.
해마다 9월이 오고, 태풍이 오고, 추석이 오고, 또 훈이를 보낸 그 날이 온다.
우리 나라를 스치고 지나간 커다란 태풍 가운데 2003년의 매미를 이야기하는 기상 전문 기자의 보도를 애써 심상하게 듣는다.
매미가 지나가고, 찬란한 하루 뒤에 화려한 낙조 속에 그렇게 떠나보낸 그 날이 온다.
어떤 아픔도 없이, 어떤 회한도 없이 어떻게 그 날을 떠올릴 수 있을까?
영원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면 어덯게 그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아직 십 년도 채 못 되었는데, 아직 십 년도 채 안 되었는데, 서른 아홉에 훈이를 버려 두고, 그를 떠나 우리 형제는 모두 오십대에 닻을 내렸다.
오늘 그가 눈물겹게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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