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참 오랜만에 1박 2일 일정으로 우리 땅 걷기 기행에 따라 나선다.
편안하게, 아주 편안하게. 없는 것처럼, 전혀 존재감이 없는 것처럼. 첫 기행처럼, 처음 기행에 나서는 초보처럼. 조심스럽게, 이끼가 살짝 끼어 미끄러운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마이코치치에 따르면 3시간 30분 동안 약 10km를 걸었단다.(9월 1일 토요일)
작년 해파랑길에서 걸었던 영덕 블루로드를 다시 걸었다.
해맞이공원과 풍력 발전소에서 시작하려니 했는데, 아침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점심 먹고 걷기를 시작하니 그리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영덕군 영덕면 축산읍 근처 바닷가를 걸었다.
작년에는 거의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아 조금은 야생의 냄새가 났는데, 블루로드의 명성이 전국에 자자하여 거의 모든 길이 목재 데크로 바뀌어 있었다.
낑낑거리고 힘들어 하며 오르던 길도 모두 나무 계단으로, 파도가 밀려 들어 모습을 감추었다 드러냈다 하는 바윗길도, 파도가 먼 바다로 밀려갈 때 그 찰라를 이용해 건너야 했던 그 아슬아슬 했던 길도 단단한 바윗돌로 만든 징검다리로 정비되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도회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드레시한 스커트 차림의 연인을 만날 수 있었으니, 개든 소든 누구나 갈 수 있는 만인의 블루로드가 되고 말았다.
조금은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에도 불구하고 블루로드는 여전히 투명하고 찬란하며 아름다웠다.
길도 바뀌고, 함께 걸었던 도반들도 많이 바뀌고, 작년에 함께 걸었고 지금도 함께 걷는데 그 마음이 너무나 바뀌고 달라져서 너무나 낯선......
그럼에도 바다는 여전히 거기에 그렇게 있었다.
옥빛, 에메랄드빛, 쪽빛, 소랏빛, 크로아티아 블루, 투명한 가을빛.
녹음이 짙어질 대로 짙어진 소나무 사이로 바라 보이는 바다와 하늘 빛은 같은 듯 다른 듯, 녹음의 절정을 향하여 치달리는 솔잎 사이로 보이는 바다의 파도와 하늘의 구름 빛은 같은 듯 다른 듯.
산산님과 머핀님, 올해 들어 우리 땅 기행에 세 사람이 함께 나선 것도 처음이고, 우리 땅 기행에서 세 사람이 함께 같은 방을 쓴 것도 처음인 듯, 마음이 여유롭고 평화롭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무엇이 나의 일일까?
서재에 두고온 김연수의 책을 떠올리며 소나무 솔잎이 잔뜩 떨여져 폭신폭신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한 블루로드에 앉아 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찰라를 완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라고 했던가?
삶이란 순간이 모여 인생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그 순간이 삶이라고 했던가?
오늘 밤에는 백중 보름달을 보겠지.
'우리 땅 걷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풍령 일대를 걷다 (0) | 2012.09.12 |
---|---|
십이령(금강 소나무숲길) (0) | 2012.09.07 |
괴산 산막이길 (0) | 2012.08.07 |
남한강 걷기(팔당에서 오빈까지) (0) | 2012.04.02 |
남강 기행(3차) (0) | 2012.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