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반도 여행

모스타르

꿈꾸는 식물 2012. 5. 31. 02:46

  크로아티아의 국경을 넘어 보스니아 - 헤르체고비나로 이동한다.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 보스니아 내전, 인종 청소, 코소보 사태, 사라예보의 저격수의 길, 그리고 김일성 손자이며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이 다니는 국제학교가 있는 곳.

  발칸 반도라는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멀리 로마 시대 때부터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베네치아 공국에도 속해 있었으며, 기독교 세력이 성지 순례라는 명분으로 일으킨 십자군 원정 때도, 이슬람 세력이 서양으로 나아갈 때에도 늘  통로가 되어야만 했다. 

10세기에는 십자군 원정로였으며 14- 15세기에는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을 온 몸으로 견뎌야만 했던 카톨릭의 마지막 보루였다.

로마 카톨릭과 세르비아 정교회 그리고 무슬림까지 다양한 종교가 상처처럼 아니 훈장처럼 존재한다.

근대에 들어서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침략을 받았고,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로 독립하였다.

그리고 외교의 달인 양다리의 명수 티토대통령의 지혜로 동서 냉전을 이용하여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속하지 않는 공산주의 국가, 나토에도 속하지 않는 친서방 국가로 유고슬라비아는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티토 대통령 사망 이후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붕괴되고, 뒤를 이어 살육의 바람이 분다.

묶고 싶은 자와 묶이고 싶지 않는 자의 지난한 갈등이 시작된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보스니아, 그리고 세르비아.

어느 현지 가이드 말처럼 권력과 영토와 아드리아해가 만들어내는 돈을 선점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힘이 있는 슬로베니아는 10일만에 종전, 크로아티아는 10개월만에 종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무려 3년 10개월을 끌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만 한다는 논리는 늘 언제나 유효하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데, 우리는 구경꾼 겔러리 관광객이기에 아스라히 노오랗게 피어 있는 아스빨라또를 바라보며 아드리아해를 따라 달린다.

  트로기르의 성 로렌스 성당에서 보았던 박격포가 뚫고 간 흔적이 내전의 상처를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다.  

잠깐 스치고 지나간, 한나절 방문하여 점심 먹고 떠나온 모스타르로 가는 길에서 만난 수많은 포탄의 흔적과 마음까지 서늘하게 만드는 락카칠로 한 낙서들이 보스니아 내전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지 못하도록  강요한다.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들이 자행된 곳.

사람들 마음 속의 잠재적 두려움을 이용한 광기의 천재 밀로셰비치와 세르비아즘의 부활.

동양과 서양이 만나 충돌하는 곳, 카톨릭과 무슬림이 만나 갈등하는 곳, 부동항을 찾기 위해 남진하는 러시아와 상품 시장과 원료 공급지를 찾기 위해 동진하는 서양 세력이 만나 부딪히는 곳, 10세기 십자군 원정, 14세기 오스만 투르크의 서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남진,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그 많은 전쟁의 기억들은 DNA로 각인되어 유전된다.

과거의 두려움은 결국 반복되리라.

내재된 잠재적 두려움을 이용하여 밀로셰비치는 결국 인종청소라는 이름의 살육을 감행한다.

트로기르에서 잠깐 만난 늙은 현지 가이드의 눈물 맺힌 절규처럼 '이웃의 이웃에 대한 살육'은 그렇게 시작 되었다.

  카톨릭 지역과 무슬림 지역을 이어 주었던 '오래된 다리'라는 스타리 모스트를 기습 공격하여 파괴하고, 락카칠로 '무슬림'이라는 낙서를 하여 그 집을 고립 시키고, 살인과 약탈, 집단 강간과 윤간을 범했다.

2만 명의 여성들이 집단 강간 당했으며 지금도 10만 명의 전범들이 있다고 한다.

세르비아 민병대와 세르비아 민병대 복장을 한 세르비아 정규군에 의해 수많은 이슬람교도와 코소보 주민들이 희생 되었다.

전쟁은 광기이며, 최고의 전범은 밀로셰비치 . 카라지치 . 믈라디치이다.

그러나 전범의 범위를 어디까지 잡아야 하며, 누구를 재물로 삼아야만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1993년 내전으로 이렇게 붕괴 되었던 모스타르 다리는 세계 각국의 후원으로 2004년 복원되어 네레트바 강을 이어 주며 슬픈 보스니아 역사를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기독교의 사원과 무슬림 사원이 공존하는, 이집트와 모로코적인 내음이 나는 아름다운 모스타르.

이 모든 슬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향기롭고 공기는 온화하다.

이 부드러움의 근원은 무엇인가?

이 향기로움의 심연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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