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 소모임

지리산 화대 종주(2)

꿈꾸는 식물 2012. 5. 8. 15:19

  수많은 지리산의 야생화들을 만나다.

노오란 애기 똥풀, 하이얀 애기 별꽃, 노오란 동의나물, 하이얀 제비꽃과 으아리, 바람 난 환상의 꽃 보랏빛 얼레지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 연하천까지 계속 이어지는 보랏빛 얼레지는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합장하듯 꽃잎을 모두 모으고 다소곳하게 아래로 향해 있다가, 꽃잎을 모두 위로 까서 내보이며, 저 자신은 여전히 땅을 향해 있는 그 꽃, 얼레지.

세석의 진달래는 못 보았지만 순결한 분홍빛의 화엄사 진달래는 활짝 피어 있었다.

진달래의 연분홍빛의 종결자로서의 모습을 말없는 웅변으로 보여 주고 있다.

  탐방객들이 그리 많지 않고, 우리가 선두에 서서 갔기 때문인지 지리산의 많은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뭔가 물고 부지런히 제 갈 길을 가는 어린 다람쥐들, 바위 틈을 조금씩 나오며 제 모습을 조금씩 보여 주며 포토라인을 만들어 준 도마뱀, 깊은 산에 사는 새답게 청아한 목소리를 들려 주는 이름 모를 산새들, 우리를 피하지도 않고 여유있게 낮게 나는 산새들을 보는 기쁨.

지리산에 어울려 사는 많은 존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가을 노고단에서 만월을 보며, 지리산의 팔경이라는 벽소령의 만월을 이야기 했었다. 

5월 5일이 보름인데 이틀 전인 3일 밤, 벽소령에서 아직 만월에서 조금 덜 찬 보름달을 볼 수 있었다.

실컷 자고 1시 반 정도 화장실에 가려고 나섰다가 교교한 달빛에 깜짝 놀랐다.

벽소령 하늘이 넓어 벽소령 만월을 알아 준다는 산산님의 설명이 없어도 노고단의 만월과는 격이 다른 벽소령의 보름달을 보며 나는 무엇을 생각했는가?

휘엉찬 동그란 - 조금 보름에서 덜 찬 - 달이 높이 돋아 멀리 멀리 비추고, 살랑거리는 바람에 구름인지 안개인지가 달 옆으로 살며시 비껴 흐르고 있었다.

교교한 달빛, 두둥실 휘엉찬 그러나 창백한 보름달, 그리고 수많은 별 또 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축복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아볼 가치가 있는지도 모른다.  

  천왕봉 일출을 보러 가는 새벽, 일출 시간은 5시 35분이란다.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본다는 천왕봉 일출을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고, 너무 일찍 오르면 추울 듯해서 천천히 천왕봉으로 나아간다.

하늘에는 별이 가득, 렌텐을 켜지 않는 우리를 위해 뒤에서 따라 오시며 불빛을 비춰 주시는 착한 마음이 가득.

의유당 김씨의 '동명일기'에 나오는 표현처럼 윗니 아랫니 두들겨 떨며 일출을 보았다.

바람 때문에 몸은 날아갈 듯, 다행히 베낭 무게로 버티며 그 찬란한 일출을 보았다.

해파랑길을 걸으며 보았던 바다의 일출과는 격이 다른, 모든 것을 다 드러내지 않고 뭔가 감춘 듯, 붉은 빛도 바다의 일출보다 조금은 연한 붉은 빛으로 그러나 더 치열한 모습으로 떠오른다.

디카의 중심을 잡으려고 애를 써도 바람이 내 몸을 밀고 디카 몸체와 카바를 흔들어댄다.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지고, 해는 둥근 모습을 완전히 보이며 빠른 속도로 떠오른다.

그리고 새 날이 밝았다.

  아름다운 삼일간의 일탈을 뒤로 하고 우리는 서울로 돌아온다.

내 영혼 한 조각 남기고,

그 영혼을 만나러 이번 가을에 또 지리산으로 떠나리라.

나의 일탈을 위하여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준 주선씨와 승민이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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