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일기

걸어서 올림픽공원으로

꿈꾸는 식물 2012. 4. 24. 20:23

  오후에 보충 수업이 잡혀 장정애님과의 파주 누리길 약속을 다음으로 미루었.

죄송했지만 우리네 삶의 우선 순위를 차지하는 밥벌이의 그 무거움과 소중함을 아는 분이기에 기꺼이 다음 주로 미루어 주셨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 아름다운 계절을 그냥 버릴 수 없기에 현옥이랑 올림픽공원을 가볍게 걷기로 했다.

집에서 출발하여 잠실철교로 도강, 성내천 합수 지점 지나 올림픽공원으로 진입, 체조 경기장까지 정문쪽으로 돌아 체조 경기장에서 현옥이와 접선했다.

몽촌토성 중심으로 위로 아래로 돌고, 평화의 문이 보이는 솔숲에서 김밥 먹고, 현옥이는 골프 연습장으로, 나는 롯데로 걸어 갔다.

4시간 동안 14km를 걸었다.(4월 20일 금요일)

  전날 머핀님과 걸었던 길을 혼자 걷는다.

대부분 혼자 길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걸었는데, 머핀님과 함께 걸으면서 혼자 걷기 싫어하는 나쁜 버릇이 몸에 붙어 버렸다.

머핀님이 걸을 수 없으면 누구라도 불러 내어 같이 걸으려는 이 버릇을 어떻게 고칠까 생각해 본다.

'나쁜 습관'이야말로 우리를 파괴하는 주범이다.

  하루 사이인데도 벚꽃의 분홍빛은 희미해지고, 조팝꽃의 화려한 흰빛은 두드러지고, 철쭉의 꽃망울은 부풀어 오를 대로 부풀어 곧 터질 듯하고, 나뭇잎의 연두빛은 제 시절을 만난 양 위풍당당하다.

내일 비가 내리면 온통 세상은 연두의 유혹으로 빛날 것이다.

연두빛 어린 손바닥 단풍나무는 붉은 씨앗을 프로펠라로 만들어 날려 보낼 준비로, 나뭇잎 이파리 이파리마다 붉은 빛을 달고 있다.

나는 이 시절 단풍나무를 제일 좋아한다.

붉은 빛 긴 끈이 프로펠라로 변하며 날아 가려는 모습에는 가슴이 두근거린다.     

  전날 평화의 문쪽 호수에서 몽촌토성을 바라볼 때, 하얀 벚꽃 사이에서 짝짓기를 하는지 아니면 새끼 먹이를 나르는지 유난히 바쁘던 흰 새들을 줌으로 당겨서 찍었다.

오늘 그 하얀 벚나무 아래에 와서 새를 보려고 목을 빼도 새는 잘 보이지 않고, 명랑하고 활발한 새들의 지저귐만이 귀에 부서진다.   

작은 호수를 사이에 두고 반대쪽에서는 지저귐은 없이 새들의 분주한 날개짓만 보이는데, 이 곳에서는 새들의 모습은 볼 수 없고 활기찬 지저귐만이 귀에 닿는다.

대상과의 거리가 만드는 그 엄청난 차이에 우리는 알면서도 늘 처음인 양 허둥거린다.  

어제 머핀님과 올림픽공원을 성내천 오른쪽 둑방길로 들어 가면서 왼쪽 둑방길이 더 아름다워 보여 오늘은 혼자 왼쪽 둑방길로 걸어 가는데 오른쪽 둑방길의 벚꽃과 개나리가 훨신 더 풍성하고 은성해 보인다.

어떤 대상과의 거리, 어떤 시점의 시간과의 거리, 어떤 대상과의 친소(親疎)의 거리가 만드는 엄청난 차이.

아무리 까고 까도 양파는 양파일 뿐, 높이 매달린 포도는 늘 신 포도일 뿐 .

이렇게 믿고 또 믿으며 나는 오늘 하루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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