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선씨 부부 동반 모임인 이수회(삼수회)에서 경복궁 답사에 나서다. (3월 4일 일요일)
정말 오랜 만에 이슬이네 언니 부부를 제외하고 모든 분들이 나오셨다.
어제 남한산성에서 날이 더워서 힘들었던 주선씨가 너무 옷을 얇게 입게 와서 걱정이 되었다.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는 서양의 속담은 이 경우에 유효하다.
이 속담도 옛날에는 영어로 암기할 수 있었는데, 잠깐 마음이 서늘하고 쓸쓸해진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는가, 자연의 순리이며 이치인 것을.
경복궁을 올 때마다 경복궁, 근정전, 사정전을 비롯한 경복궁 안의 모든 문과 전각에 이름을 지어 부른 정도전을 나는 떠올린다.
왕권주의가 아닌 신권주의 조선을 설계했던 정도전의 그 담대한 꿈을 생각한다.
왕은 오로지 정치에 힘쓰고 정치를 생각하며 왕실의 번영을 위해 생산에 힘써야만 한다는 신하들의 나라 조선을 향한 원대한 포석을 놓았던 정도전의 영광과 좌절을 떠올린다.
근정전에서 성대히 거행되었던 세종의 즉위식을 그려 본다.
선왕이 승하하고 왕위를 계승해야만 했기 때문에 대부분 조선의 왕들은 장례 기간에 즉위식을 거행해야 했지만 세종만은 태조의 양위로 축복 속에서 즉위할 수 있었다.
그 얼마나 기쁨이었을까.
그러나 세종 역시 기쁨 속에서도 장자가 아니라는 콤프렉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 정신적인 외상이 약한 장자인 문종을 거쳐 어린 장자인 단종을 지나 세조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는가'라는 말은 모든 경우에 유효하다.
향원정을 지나니 명성왕후의 건청궁이다.
어염집 사가처럼 지어진 건청궁에서 고종과 명성왕후는 어염집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평화로운 삶을 기대 했을까.
고종의 수많은 외국 사절 접견이 이루어지고 수많은 불공정 조약이 아루어지고, 급기야 일본의 낭인에 의해 명성왕후가 시해된 이 곳.
자신의 평화는 물론 백성들의 평화로운 삶을 지켜내지 못한, 심지어 자신의 지어미의 삶도 지켜내지 못한 비운의 군주 고종을 건청궁 옥호루 앞에서 떠올린다.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는 때때로 치열한 투쟁이 있어야 함을, 평화로운 삶을 꿈꾸기 위해서는 그 꿈을 지킬 물리적 힘이 있어야 함을 알지 못 했던, 알았다 하더라도 실천하지 못 했던 왕실의 비극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공격이 최고의 수비'라는 축구의 전술은 이 경우에도 유효하다.
향원지에서 시작하는 물로 만든 연못 가운데 있는 경회루를 돌아 본다.
단종이 세조에게 국쇄를 스스로 넘기고 상왕이 되기를 자처 했다는 연회가 열린 경회루.
결국 단종은 경복궁을 나와 청룡사에 있는 정순왕후를 만나고 영도교를 지나 영월로 떠난다.
여주까지는 한강을 이용한 뱃길로, 그 다음은 걸어서 걸어서 영월 청룡포로 영원한 길을 떠났다.
언젠가 그 길을 나도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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