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기

태백산 눈꽃 산행

꿈꾸는 식물 2012. 2. 28. 14:54

  지난 12월 주선씨의 골프방학 이후 여러 번의 부도 수표가 있었다.

계획으로는 태백산,덕유산, 설악산을 다녀 왔지만, 사실은 세 산 가운데 그 어떤 산도 다녀 오지 못 했다.

서울 시계를 끝내고 굳이 홍락에 들려야 한다기에 택시까지 타고 갔는데, 먹고 싶다고 노래 노래한 과메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쭈꾸미보다 반가운 과메기에 맥주 마시며 혼자 독상을 받고 수다까지 한 보따리 풀어 낼 만큼 너무 행복했다.

  영동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는 일기 예보에 태백산 이야기를 주선씨가 또 꺼낸다.

사실 큰 기대하지 않고 또 부도 수표려니 했다.

목요일 청계산 종주 27km, 토요일 서울 시계 걷기 21km를 걸은 뒤 일요일 아침, 토익 시험 보러 나가는 아들 아침 준비를 하는데 태백산을 가자고 한다.

부랴부랴 준비하고 나섰지만 8시가 훌쩍 넘었다.

제천을 지나며 마주치는 설산이 마음을 동동 뜨게 한다.

계속 눈은 내리고, 11시 20분 쯤 태백산 주차장에 도착, 눈은 푹푹 내리는데 주차 공간은 없고, 관광 버스에서는 많은 등산객들이 내리고, 눈은 이제 펑펑 내리고.

당골 주차장에 주차하려고 30여 분 시도하다가, 과감하게 마음을 접고 서울로 다시 돌아 가기로 했다.

계속 눈이 내리면 월동 장비도 없는 차를 끌고 서울로 돌아갈 길이 너무 아득하기 때문이다.

태백산은 올 겨울에도 내년 겨울에도 있는데,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며 마음을 다독이고 돌아서는데, 유일사 주차장으로 주선씨가 차를 넣는다.

결국 우리는 유일사에서 천제단 찍고 다시 유일사로 내려오는 8km의 산행을 세 시간 반만에 했다.(2월 26일 일요일)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태백산의 주목 군락지를 몇 년 전에 보았지만, 그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2009년 태백이 그 악명 높았던 가뭄에 시달려 눈꽃축제까지 취소 되었을 때, 운 좋게 유일사에서 천제단까지 오르면서 태백산 주목의 눈꽃을 볼 수 있었다.

이제 오늘 태백의 눈꽃은 눈꽃 종결자로서 모습을 보여 준다.

어제 청계 뛰고(옥녀봉에서 매봉 지나 석기봉, 망경대까지) 오늘 아침 눈 속에서 세 시간 운전하느라 힘들었을 주선씨를 배려해야 하는데, 마음이 자꾸만 동동동 뜨는 바람에 발걸음도 자꾸만 빨라진다.

기다렸다가 주선씨가 다가오면 모자와 베낭과 옷에 쌓인 눈을 한바탕 털어 주는 것으로 내 고맙고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더 불어 오면서 잠깐 사진을 찍으려고 손을 장갑에서 꺼내면 바로 손이 시렵고 얼어 버린다.

베낭 주머니의 물도 살짝 살얼음이 얼었다.

눈은 앞을 가리고, 디카의 렌즈를 가리고,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 위에 나리고 또 나린다.

멀리 가까이 보이는 모든 산 봉우리가 하얀 눈에 덮혀 은세계를 연출한다.

주선씨도 나도 그렇게 눈 속에서 풍경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시간이 흐르면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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