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이어 북한산 둘레길 걷기에 나섰다.
오늘은 평창 마을길 - 명상길 - 솔샘길 - 흰구름길 - 순례길 - 소나무숲길, 이렇게 여섯 구간이다.
구기터널 앞 한국 고전 번역원 앞에서 9시에 산산님과 머핀님 출발, 4시에 우이동 먹자골목에 도착했다.
마이 코치에 따르면 여섯 시간 동안 19km를 걸었다.(1월 26일 목요일)
눈이 푹푹 쌓인 설산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이 하얗게 덮힌 겨울산을 기대했는데 살짝 실망했다.
하지만 상큼한 겨울산은 충분히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잎을 모두 떨군 겨울 나목 사이로 가끔씩 마주하는 독야청청한 소나무를 많이 만날 수 있는 구간인 것도 고마운 일이다.
낙락장송은 아니지만, 정갈한 나목 사이에서 홀로 푸른 소나무를 만나는 이 구간은 커다란 위로이다.
정원 조경으로 그 안을 짐작하기 힘들었던 평창 마을길의 집들도 모두 떨군 정원수 사이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크고 작은 북한산 봉우리들을 바라 보며 걸을 수 있는 기쁨은 북한산 둘레길의 가장 큰 매력이다.
4.19 묘역을 지나며 산산님의 이야길를 듣는다.
초등학교 4학년 소풍을 준비하기 위해 회의를 했던 때, 4.19 학생 의거를 마주 했던 기억을 들추어 내신다.
그 때 나는 1959년생이니 두 살인 강보에 싸인 어린 아이였는데, 산산님은 학생들이 몰려 갔던 서대문 이기붕의 집터 이야기며 이승만 대통령의 흉상을 쓰러뜨려 목에 줄을 매어 끌고 다닌 이야기며를 잔잔하게 들려 주신다.
우리 나라 민주화가 가장 큰 빚을 진 광주 망월동 묘지의 그 아픈 통곡까지를 담담하게 들려 주시는 산산님의 마음이 지금도 아프도록 절절하게 다가온다.
질곡의 우리 나라 현대사 가운데 6.25를 몸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을 몹시 안타까워하시는 산산님의 그 못 말리는 열정에 두 손 두 발 모두 들고 말았다.
늘 배운 사람이며 늘 가진 사람이지만, 산산님 자신을 소수로 놓는 균형 때문에 나는 산산님이 너무 좋다.
늘 주어진 상황과 주어진 시간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인생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지닌 머핀님과 함께 걷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아들 이야기, 가게 이야기, 친정 엄마 이야기, 일산 친구 이야기, 온수역 지인 이야기, 또 나도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할 때도 늘 그들에 대한 사랑과 긍정을 지닌 머핀님과 함께 걸으면 나도 조금은 좋은 사람이 되는 듯, 긍정의 힘이 솟는다.
그래서 오늘 '삼각산'의 세 봉우리 이름도 잘 생각해 내고, 윌리엄 워즈워드의 '초원의 빛'도 잘 암송해 냈는가?
역시 긍정은 힘이 세다.
박완서님에 대한 작가 은희경의 일갈, '인생에 대한 긴장감, 나 자신을 소수로 놓는 균형'을 나 역시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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