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기

아, 치악산

꿈꾸는 식물 2009. 2. 8. 12:20

  치악산 등반을 위해 나섰다가 구룡사만 마음에 담고 돌아오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한 시간 반이면 충분할 거라는 남편의 예상과는 달리 차가 계속 막혔다.  급기야는 가다서다까지 하더니 정오까지 도착 예정이었는데, 40분이나 지연되어 치악산 탐방센터에 도착했다.  서둘러 올라 갔지만 세렴폭포 통제소에서 40분 차이로 짤려 등반이 거절 되었다.  한 사람이 아쉬어 범법 행위를 제의하면 다른 한 사람이 막아 내고, 다른 한 사람이 입산금지 쪽으로 월장하자고 부추기면 또 다른 한 사람이 벌칙금 50만원 이야기를 꺼내며 막아 내고......  결국 우리 주제로는 세렴폭포 옆에서 준비해 간 막걸리와 김밥을 마시고 먹고 돌아오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치악산 입구의 쭉쭉 뻗은 잣나무와 전나무, 금강소나무가 마음에 들어온다.  무엇이든지 반듯하게 잘 자란 것은 보는 사람을 흐뭇하게 한다.  잘 자란 대파, 곧게 뻗은 도로,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곧게 치솟은 나무, 구김 없이 밝게 자란 사람들이 고맙고 또 고맙다.  때로 굽이굽이 휘어진 길과 바람 따라 휘어져 나부끼는 억새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지만 반듯하게 쭉쭉 뻗어 비뚤어지지 않은 존재는 나의 동경과 꿈이다.  나는 저 잣나무와 전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곧게 뻗는 반듯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지난 예봉산에서 솔밭 사이로 흐르는 강물에 마음을 빼앗겼는데, 솔밭 사이로 하얀 비단처럼  펼쳐진 얼어붙은 계곡이 마음에 닿는다.  모든 것을 내려 놓은 겨울 나무들 사이로 하얗게 보이는 꽁꽁 언 계곡,  때이른 봄 날씨 때문에 햇볕이 따뜻한 양지 사이사이 녹아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조금씩 물이 오르는 것을 느끼게 하는 옷 벗은 겨울 나무에서 떠올리는 봄날의 예감.  지난 가을 나뭇잎을 떨구었기에 그 자리에 다가오는  봄날 새 꿈을 꿀 수 있으리라.  버려야만이 얻을 수 있다는 삶의 오묘한 이치.  버리지 못하는 것은 무지와 집착 때문이라는 구룡사에서 들리는 독경의 뼈아픈 지적에 마냥 부끄럽다.  다른 사람들은 묶어내고 풀어내고, 내려놓고 주워들고를 잘들도  하는데 나는 이 지천명의 나이에 왜 이렇게 심하게 낯가림을 하며 엄살을 부리는지 한심하기만 하다.

 

 

 

 

 

 

 

 

 

 

 

 

 

 

 

 

 

 

 

 

 

 

  서로 다른 나무와 나무가 만나 하나가 되어 생기는 연리지를 만나다.  남편은 아직 연리지라고 부르기에는 빈약하다며 야유한다.  지난 봄 유진이와 소정이랑 같이 갔던 벽초지 수목원의 연리지를 떠올린 까닭이리라.  조그마한 인연이 모아모아서 필연이 되듯이 처음에는 미흡하나 나중에는 창대하리라.  나중에 남편과 함께 또 이 길을 걸을 때 비로봉을 못보고 아쉬움에 내려갔던 봄날만 같았던 이 겨울 산행을 기억하리라.  저 조그만 연리지도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면 완전한 연리지로 자리 매김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구룡사는 아름다운 절집이다.  적당히 번잡하고 적당히 고즈넉해서 한참 동안 마음에 담아둘 것 같은 느낌이다.  대웅전 앞에서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린다.  스쳐 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나지막한 사람들의 말소리, 마음에 들어오는 풍경 소리 또 풍경 소리, 그리고 겨울산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 이 모든 소리가 아름다운 치악산과 더불어 내 마음 속에 들어와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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