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초입 남편이랑 청계천까지 걸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그날따라 유난히 바람이 불어 강과 천을 걷기가 녹록하지 않았는데 남편은 코까지 빨개지며 기꺼이 동행을 해 주었다. 그 기억이 내 몸과 마음 어느 부분에 남아, 봄이 오는 길목에서 추억으로 떠오른다. 달래도 달래도 달래지지 않는 마음을 추스리려고 하루 간격으로 근 20km 되는 길을 나서는 이 마음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남을까?
아들이 일어나기를 한 시간 정도 기다렸는데 잠의 뿌리를 캐려는 듯, 아들 녀석은 미동도 없이 수면 삼매경이다. 베낭에 커피 한 통과 에이스 크레커를 넣고 열 시에 집을 나선다. 간절히 원하면 하늘은 들어주신다는데, 내가 간절히 원할 때마다 하늘은 다른 사람 일로 너무 바빠 내 간절함을 묵살을 넘어 개무시한다. 나는 하늘의 뜻에 맡긴다는 표현은 절대 쓰지 않는다. 단지 내 소망을 들어주기를 기원할 뿐이다. 진경이 말대로 하늘은 답을 주시는데 아직 그 때가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가 지금이기를 나는 간절히 원했다. 그 때를 하늘에게 지금으로 주시라고 소망했다. 또 내 간절함은 철저히 침묵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텅 빈 주머니처럼 허전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씩씩하게 당당하게 살아내려는데 자꾸자꾸 바람 소리가 들린다. 나는 언제나 내게 주어진 삶과 화해할 수 있을까? 한강을 지나 중랑천으로 그리고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20여km의 길을 쉬지 않고 걸어도 머리 속은 투명해지지 않는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의 커다란 수레바퀴에서 내려오고 싶다. 담담하게 미련 없이 삶을 살아내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내 꿈이 너무 야무진가 보다. 나는 아직 나이값을 못하는 덜 떨어진 인간이다. 언제나 나는 내 나이에 어울리는 생각을 하며, 내 나이와 조화를 이루는 꿈을 꿀까? 아득하고 또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