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기

걸어서 서울 대공원까지

꿈꾸는 식물 2009. 3. 6. 19:06

  지난 가을 지도를 출력하여 과천길에 나선 이래 벌써 네 번째이다.  두 번은 혼자였고, 한 번은 아들 아이 피아노 선생님과 양재 시민의 숲까지 동행했고, 또 한 번은 연말에 남편과 역시 시민의 숲까지 동행했다.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고......   내 마음의 바람도 방향을 바꾸어야만 하는데 방향을 잡지 못해 그 상실감에 어쩔 줄 모르고 낯가림만 하고 있다.

 

  지난 가을 무성했던 갈대들도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  상큼하게 가지 치기를 한 봄맞을 준비를 끝낸 나무들,  어제 내린 비로 훨씬 수량이 많아져 기운차게 흐르는 양재천의 물 흐르는 소리,  새롭게 단장한 서초구 구간의 양재천 모습이 정겹다.  봄의 예감에 마음이 애잔하다.

 

  이 년의 휴학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아들 녀석은 밤마다 발바닥이 아프다며 심하게 명륜동에 낯가림을 한다.  한 걸음도 떼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 학교가 녀석을 주눅 들게 하고 외롭게 할 것이다.  에미이면서도 나는 애써 그것을 모르는 척 한다.  그것은 아들 아이 몫의 짐이니까.  절대 내가 나누어 가질 수 없는 마음의 무게이니까.  처음 걸음마를 배울 때도 녀석은 발을 쉽게 떼지 못했다.  벽을 잡고 걷다가 벽이 없으면 장소 불문하고 그냥 기었다.  처음 말을 배울 때도 녀석은 무조건 첫글자에 '가'라는 조사를 넣어 문장을 만들었다.  다른 아가들처럼  단어를 말하지 않고 모든 단어의 첫 글자에 조사로 생각되는 '가'를 넣어 문장으로 말했다.  한 걸음 걸음을 떼고 나서부터는 뛰어 다녔다.  한 문장 완벽하게 말하고 나서는 못하는 말이 없었다.  첫 걸음 떼기는 누구나에게도  어렵다며 아들을 위로하고 싶지만 나는 아들에게 뒤를 주지 않는 냉정한 에미다.  나의 때늦은 거리 두기가 아들을 강하게 키워내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물가에 서있으면 잠깐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왜가리 한 마리가 바람 속에서 미동도 없이 서 있다.  마음을 던지고 허허롭게 서있는 그 모습을 마음에 담는다.  디카를 가져 오지 않는 나의 대책 없음에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가끔씩 나도 마음을 던져 버리고 멍하니 서있는 왜가리처럼 바람 속에 서 있고 싶다.

 

  '바람 속으로 걸어간다'

가끔은 나를 방치하고 싶다.

가끔은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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