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기

태백산 눈꽃

꿈꾸는 식물 2009. 1. 18. 21:33

  지난 성탄절부터 남편은 태백산 노래를 불렀다.  눈꽃 열차를 타고 가면 등산할 시간이 부족하여 아쉬울 거라며 차를 가지고 떠나기로 하였는데 길이 미끄러울 것 같아 설악산으로 방향을 돌렸다.  1월 첫번째 주는 남편이 늦잠 자는 바람에 예봉산행을 했고, 두번째 주는 내가 늦잠을 자는 바람에 검단산행을 했다.  드디어 새해 새 정기를 민족의 영산에서 가득 받기로 의기투합을 했다.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하여 태백산 국립공원에 정오 못미쳐 도착, 당골광장에 주차하고, 택시로 유일사 매표소로 이동, 정오부터 산행을 시작하다.

 

  모든 인간들이 태백산으로 몰린 듯 가을날 북한산 백운대에 몰려든 사람들보다 등산객들이 더 많다.  약간의 후회와 함께 떼지어 유일사 매표소로 들어섰다.  나를 사로잡은 반듯반듯 죽죽 하늘 행해 솟구쳐 오른 전나무 무리들.  시리도록 파란 구름 한 점 없는 겨울 하늘을 향해 모든 것 다 떨구고 우러러 부끄럼 없기를 갈구하는 전나무 도 전나무.  나무든 사람이든 반듯하게 곧게 자란 존재들은 다른 존재들을 늘 감동 시킨다.  나는 누구에게 단 한 번도 깊은 감동을 주지 못했을 거라는 뼈아픈 자책이 마음 시리다.

 

  모든 것을 다 떨구고 마음 비운 나무를 위해 하늘이 선물한 눈꽃 세상이 이어진다.  눈과 바람이 힘을 모아, 잎을 다 떨구고 마음을 비워 더 풍요로워진 나무를 위해 텅 빈 나뭇가지에 눈꽃을 피워내고 있다.  나무가 온 몸과 마음으로 피워낸 봄날의 꽃들보다, 몸과 마음을 비운 나무를 위해 눈과 바람이 피워낸 이 겨울의 눈꽃들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비우고 또 비우고, 내려 놓고 또 내려 놓아야 이토록 아름다운데 왜 나는 이 생의 미망(迷妄)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왜 나는 이 생의 업(業) 에서 정녕 자유롭지 못할까.

 

  천제단에 가까워지자 끝없는 감동으로 이어지는 주목의 무리들.  하늘이 고운 설탕가루를 고운 채를 대고 며칠을 일삼아 뿌린 듯 촘촘하게 눈가루로 켜켜이 빈틈 없이 채워진 나뭇가지의 놀라운 세상.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이라는 주목 군락에 쏟아지는 겨울 햇살들. 아직 남아 있는 주목의 빨간 열매를 먹기 위해 모여든 새들 또 새들.  태백산 눈꽃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마음껏 빠진다.

 

  드디어 천제단이다.  난생 처음으로 다른 사람 이목 신경 쓰지 않고 절절하게 기도한다.  조상들이 간절하게 빌었던 그 바람을 들어주신 것처럼 이 어미의 바람을 들어 주소서.  바람 소리도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들리지 않는다.  하늘과 나의 바람만 있다.  나는 어미이다.  그냥 눈물이 나온다.  모든 게 너무 절절하고 사무쳐 눈물이 나온다.  모든 게 너무 아름답다.

 

 

 

 

 

 

 

 

 

 

 

 

 

 

 

 

 

 

 

 

                          

'걷고 또 걷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용문산에 오르다  (0) 2009.02.04
덕유산 눈꽃  (0) 2009.01.28
검단산  (0) 2009.01.11
예봉산  (0) 2009.01.04
일상으로  (0) 2009.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