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차마고도 기행(2)

꿈꾸는 식물 2010. 8. 26. 01:32

그곳에도 눈물이 있었다.(2)

 

  나는 언제나 꿈을 꾼다. 꿈은 나를 존재하게 하고, 꿈은 나를 상처 받게 한다. 그럼에도 나는 꿈꾼다. 그래서 나는 ‘꿈꾸는 식물’이다.

 

  사시 마을 강변의 밤. 시간이 멈추고 공간마저 희미해진 그곳, 내가 어떤 시간에 놓여 있는지 내가 어떤 곳에 놓여 있는지 잊어 버리고 앉아 있다. 살랑거리는 부드러운 바람, 올려다 본 투명한 하늘의 서늘한 달빛, 귓가를 스치고 먼 영원을 향하여 떠나는 길동무들의 노랫소리. 그 옛날 마방들도 말에 차를 실고 이 길을 따라 걸으며 내가 느낀 바람과 달빛과 강물 소리를 마음에 담아 두었으리. 시간이 흐르고 흘러 또 누군가도 이 강변에 앉아 나처럼 영원을 생각할까. 흐르는 것들은 영원하리라 믿고 또 믿어 본다. 영원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면 이 생은 얼마나 쓸쓸한가. 영원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이 생은 얼마나 부질 없는가.‘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그래서 나는 사시 마을 강변에서 술을 핑계 삼아 눈물을 흘렸다.

 

  헬프 웨이 객잔의 밤. 히말라야 끝자락 옥룡설산을 바라보며 합파설산에 앉아 있다. 그 사이를 도도하게 흐르고 있는 진사강을 느낀다. 보이지 않아도 옥룡설산의 만년설을 온 몸과 마음으로 느낀다. 집순이인 내가 가족에게 미리 알리지도 않고 나선 부석사 답사는 혁명이었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집 밖으로 걸어 나온 지 올해 10월이면 이제 2년. 지금 나는 그러나 차마고도의 호도협에 있다. 살금살금 조금씩 걸어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안나 푸르나 둘레길을 꿈꾸며 여기 있다. 생이 나에게 늘 시어빠진 레몬만을 던져 준다면, 투덜거리지 않고 이제 그 레몬으로 레모나이드를 만들어 마시리라. 비관적 허무주의자에서 낙관적 허무주의자로, 낙관적 아나키스트로! 웃으려고 했는데 그냥 눈물이 흐른다. 이 눈물은 빠이주 때문일 거야. 오늘 빠이주를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얼하이 남조풍정도의 밤. 바다 아닌 호수에서 듣는 파도 소리가 늘 귓가에 머물러 있다. 시간이 흘러 어둠이 내릴수록 파도 소리는 커진다. 시각이 둔해질수록 청각은 예민해진다. 점점 모든 사물들은 사라지고 파도 소리만이 가득하다. 이제 그만 이루지 못한 꿈, 이룰 수 없는 꿈을 내려 놓으리라. 그리고 이루고 싶은 꿈 하나 챙겨 가지고 집으로 돌아 가리라. 이루지 못한, 이룰 수 없는 꿈보다 이루고 싶은 꿈을 꾸며 현실을 가꾸며 살겠다. 질곡의 삶이라 할지라도 이제는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솟는 듯하다. 오늘 밤이 내 삶에 작은 위로가 될 것을 기도한다. 너무 아름다워 또 눈물이 살짝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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