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차마고도 기행(1)

꿈꾸는 식물 2010. 8. 25. 15:17

그곳에도 사람이 있었다.(1)

  차마고도에 다녀오다. 풍광보다 더 마음에 남은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도 아련하다.

 

  아침에 말을 몰고 나가는 목부(牧夫) 아버지 등에 매달려 함께 나가는 어린 아들. 그 해맑고 조금은 부끄러운 듯한 표정과 양쪽 코에 누렇게 흐르는 콧물. 옛날 우리들이 어렸을 때는 감기에 걸리지 않았어도 누렇게 콧물을 흘리고 다녔는데, 요즘 아이들은 감기에 걸려도 콧물이 흐르지 않아 신기하다는 박완서의 소설 구절을 떠올린다. 물질적 가난과 어린 아이의 누런 콧물은 정비례하는가.

 

  전날 만났을 때 악수하자는 신선생님의 손을 끝내 잡지 못했던 어린 꼬마를 그 다음 날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오다 또 만났다. 일하는 아버지 옆에서 놀고 있는 꼬마가 이제는 익숙해진 듯 낯가림 없이 나에게 손을 내민다. 돌아서 오다가 가져갔던 과자를 그 아버지에게 양해를 구하고 나누어 주니,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그러하듯 ‘고맙다’는 인사를 하라고 젊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시킨다. 다시 손을 잡고 진심으로 그 아이의 앞날을 빌어 본다.

 

  호도협 트레킹에서 몰래 훔쳐 보았던 여자 목동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련해진다. 그 아름다운 호도협의 골짜기에 양 세 마리 풀어 놓고 뭔가에 사로 잡힌 듯 고개를 박고 하염없이 골짜기 아래를 바라보는 그녀를 나는 본다. 끝없아 이어지는 길과 길, 산허리를 감싸며 계속 이어지는 구름, 유장하게 흘러 흐르는 누런 강 물결, 한순간도 머무르지 못하는 우리네 삶의 시간과 공간. 이 생 이전에 그녀와 나는 어떤 인연이 있어 오늘 이렇게 스치고 지나는 것일까? 이 호도협에서 이렇게 스치고 지나간 인연으로 다음 생에 어떻게 무엇으로 우리는 다시 만날까? 알 수 없는 삶의 비의(秘意)에 마음은 아득해진다.

 

  사시 마을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의 얼굴 얼굴도 떠오른다. 장에 나왔다가 마을로 돌아가는 할머니와 아주머니의 뒤를 따라 서로 어울리며 보냈던 그날의 풍경. 서로 같이 앉아 서로 다른 말을 하면서도, 사진 찍고 머리 맞대며 함께 보고, 아이스 크림이라고는 할 수 없는 얼음 보숭이 아니면 얼음 과자도 나누고, 한 아주머니 댁에 가서 집구경까지 했다. 화장실이 급해 몸짓으로 대역 재현에 성공해 급기야 화장실도 사용했다, 무료로!

  우연히 참석했던 마을의 장례식 풍경.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며 망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의식을 하면서도 우리를 배려해 주던 따뜻한 마음이 지금도 내 마음에 닿아 있다. 먼 나라에서 온 이방인인 우리를 맞아주며 선생님께 담배를 건네주던 아저씨, 의자를 가져다 주며 앉기를 청하고 기꺼이 식사에 초대해 주던 내 아들 또래의 청년. 영원히 떠나가는 이를 위하여 악기를 연주하고, 한평생 열심히 살아낸 어머니의 삶을 위한 헌사인 양 축문을 낭독하고, 한쪽에서는 마작판이 벌어지고,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모여 망자의 마지막 가는 길의 안녕을 비는 모습은 마치 축제의 장면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날까지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중국의 화장실 풍경이었다. 화장실 문 앞에는 으레 돈을 받기 위해 누군가가 길목을 지킨다. 그리고 위는 개방형, 아래는 폐쇄형인 화장실이 펼쳐진다. 완전 개방형 화장실을 경험한 길동무도 있다. 냉난방 완비에 센서로 작용하는 매립등, 향기로운 방향제에 기다리는 사람을 배려하기 위한 에티켓용 물소리, 응급 사태 발생시 누르는 비상용 경고 스위치와 잔잔한 클래식 음악까지 나오는 이른바 ‘여행 화장실’(여자가 행복해지는 화장실)도 돈을 받지 않는데……. 화장실 문 앞을 지키며 열심히 뜨게질을 하는 여인, 우리 많은 일행이 몰려가자 계산을 포기하고 도망쳐 버린 어린 소녀, 우리 일행 가운데 누군가가 오각(五角)을 내지 않았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늙은 여인네, 과일을 팔며 한편으로 화장실을 지키는 투잡족(two job족) 젊은이. 화장실 풍경만큼이나 다양한 화장실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국에 오니 일원이 아까워 무료가 아니면 거의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았던 알뜰한 당신인 나는 신선생님 버전으로 한 마디 뒤늦게 반성한다.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며’로 참회한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二十) 원 때문에 십(十) 원 때문에 일(一)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一)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살며 사랑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한산 평창마을길  (0) 2010.10.21
차마고도 기행(2)  (0) 2010.08.26
남편과 함께  (0) 2010.06.18
제주도 여행 1  (0) 2010.06.18
가족 모임  (0) 2010.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