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피어 있다

꿈꾸는 식물 2009. 1. 9. 00:24

  이학년 국어 수업에 있었던 일이다.  표현 방법을 한꺼번에 알려 주니 힘들어서 헤매는 것 같아 비유하기와 강조하기, 변화주기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지난 시간에 설명한 비유하기에 관한 문제를 나누어 줘 시험을 보았다.

 

  늘 엉뚱한 소리로 시비를 거는 한 녀석이 삽질을 한다.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피어 있다'라는 문장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이 녀석의 주장이다.  꽃에 소금을 뿌리면 꽃이 다 시들어 버릴 텐데 피어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는 것이다.  배추에 소금을 뿌리면 배추도 팍 숨이 죽는다는 예를 들며 난리이다.  꽃에 소금을 뿌렸다는 말이 아니라 비유이며, 소금을 뿌린 듯이 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는 뜻이라며 설명을 해도 녀석은 벅벅 자기 주장만 하며 우긴다.  처음에는 진지하게 설명을 하다가 나중에는 놀리는 것 같아 버럭 화가 났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은 내가 짐승이라는 뜻이냐며,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저급한 영혼의 증거라며 언어 폭력을 쏟아냈다.

 

  고등학교 이학년 국어 시간, 유치환의 '울릉도'에 나오는 '국토의 막내'라는 부분을 장백 산맥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울릉도가 되어 막내라고 부른다고 설명하셨다.  지학 시간에 화산도의 형성에 대해 배운 이과생이었던  우리는 울릉도는 솟아 오른 용암이 굳어져 형성된 화산섬으로, 화산 폭팔로 생긴 용암이 해수면 위로 올라왔고, 그 용암이 바닷물과 빗물에 식으면서 만들어졌다고 서정희선생님을 비웃으며 난리를 쳤다.  화산 폭발을 손으로 재연해 가며 심각하고 진지하게 이구동성으로 설명을 했다.  그 때 선생님도 아까 나처럼 온 몸과 마음으로 화를 내셨다.  그러나 아까의 나처럼 언어 폭력은 쓰지 않으셨다.

 

  이제 세월은 흘러 선생님은 먼 길을 떠나셨고,  화산 폭발 운운했던 백선의 여고생은 지천명(知天命)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함께 하는 보편적 기준을 세워야 할 때라는 지천명(知天命)에  어린 학생들과 함게 할 수 있는 기준도 세우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운 밤이다.  나는 언제 철이 들지 어른이 되는 그 길이 멀기만 하다.  그 녀석을 위해 지난 가을 남편과 함께 했던 봉평의 메밀꽃 축제의 사진을 꺼내 본다.  곷      

    

 

울릉도 / 유치환
 

동쪽 먼 심해선(深海線) 밖의
한 점 섬 울릉도(鬱陵島)로 갈거나.

금수(錦繡)로 굽이쳐 내리던
장백(長白)의 멧부리 방울 뛰어,
애달픈 국토(國土)의 막내
너의 호젓한 모습이 되었으리니,

창망(蒼茫)한 물굽이에
금시에 지워질 듯 근심스레 떠 있기에
동해(東海) 쪽빛 바람에
항시(恒時) 사념(思念)의 머리 곱게 씻기우고,

지나 새나 뭍으로 뭍으로만
향하는 그리운 마음에,
쉴 새 없이 출렁이는 풍랑(風浪) 따라
밀리어 오는 듯도 하건만

멀리 조국(朝國)의 사직(社稷)의
어지러운 소식이 들려 올 적마다
어린 마음 미칠 수 없음이
아아, 이렇게도 간절(懇切)함이여!

동쪽 먼 심해선 밖의
한 점 섬 울릉도로 갈거나

 

 

 

 

 

 

 

 

 

 

 

 

 

 봉평 메밀꽃 축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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