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있어 몸이 먼저일까? 아니면 마음이 먼저일까? 유하 감독의 '쌍화점'을 보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처음 했던 생각이었다. 이안 감독의 '색계'를 보고 영화관을 나오면서 했던 생각과 같았다. 그러나 오늘 한강에 쏟아지는 겨울 햇살을 보며 내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벼락처럼 깨달았다.
홍림이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왕후가 아니라 왕이었다. 홍림 자신도 몰랐던 그래서 마지막 그의 세상이 사라지는 그 순간에 깨달은 것을 우매한 내가 어찌 깨달을 수 있으랴! 대부분 영화 관객들처럼 나 역시 왕의 광기 어린 짝사랑과 사랑의 거부로 인한 분노가 빚어낸 비극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왕을 향한 홍림의 마지막 눈빛과 엔딩 크레디트처럼 요동을 달리는 왕과 홍림의 모습이 나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웅변으로 이야기해 주고 있다. 자신의 사랑을 강요된 충성이나 복종으로 생각한 홍림의 무지가 빚어낸 비극이라 이제 결단코 단언한다.
동성애 역시 사랑의 다른 모습일 뿐이라며 나름대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반찬을 먹으라며 먼저 밥 위에 놓아 주는, 대식국에서 가져온 말을 타고 달릴 홍림을 생각하며 말 옆에서 기다림으로 밤을 하얗게 밝히는, 자신도 활을 쏘며 달리고 싶다는 홍림의 말을 흘려 듣지 않고 '천산대렵도'를 다시 그려 놓은 왕의 행동을 왜 사랑으로 느끼며 같이 아파하지 못 했을까? 병서를 읽었다고 거짓으로 둘러댄 홍림의 헛소리까지도 기억해 내는 왕의 모습! 사랑에 한 번이라도 빠져 본 사람은 알리라, 그의 사소함이 나의 간절함이라는 것을. 사랑에 한 번이라도 상처 입어 본 사람은 알리라, 그의 행동 하나하나와 말 하나하나를 나의 마음 속에서 하염없이 돌려보고 돌려보는 마음을. 가슴이 먹먹하다. 히스 레저의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고 한동안 마음이 길을 잃고 헤맸었는데......
우리는 언제나 때늦은 깨달음에 마음이 저린다. 때늦은 깨달음에 그대 마음 아파한 때가 언제인가? 때늦은 깨달음에 그대 뜨거운 눈물을 흘린 적이 언제인가?